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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리가 울리고,

시녀들의 안내를 따라 조심스럽게 복도를 걷고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나아간다.

넓은 회장 한 군데의 관현악단을 보면 문득, 깨닫는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은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제 1 바이올린 사이에 앉아 있지 않다. 익숙하게 느껴지던 손에 밴 군살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뭐 하나 현실과 같은 게 없었다.

자각몽이라고 했던가. 꿈인 걸 알고 나니 몸이 한결 편해졌다. 몸조심하라는 시녀들과 헤어져 늘어선 만찬을 눈으로 훑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아무도 보지 못 하는 곳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사람이 점점 사라져갔다. 한적한 발코니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바네사는 혼자가 되었다.

사라지지 않는 웃음소리와 노랫소리. 눈앞에 펼쳐진 수십 채의 저택. 평화롭고 고요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마저 따뜻했다. 하늘을 수놓은 별이 아름다웠다. 그리움은 언제나 최상의 것들만 보여준다. 꿈인 걸 알면서도, 바네사는 웃었다.

“무얼 하고 계십니까.”

낯선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긴 머리를 말쑥이 하나로 묶고 누구보다 수수하게 차려입은, 아는 얼굴이었다. 꿈.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게 꿈인지 몰랐더라도 지금 깨달았겠지. 굽 높은 구두도 신지 않아 더 작아 보이는 그가 한 발짝 다가왔다. 그가 가장 차려입었을 법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았다.

“회장에서 보이지 않기에.”

올가 파블리첸코는 군인이었고, 알드 룬의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 바네사는 그가 왜 자신의 꿈에 나타났는지 고민해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고향을 회상하는 꿈에 그가 나타난 것도, 자신의 꿈에 그가 나타난 것도. 대답을 해야 하는데, 생각할 즈음,

기다리고 있었어요.

라고, 말했다.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다가가 손을 잡고, 그를 내려다보며 춤을 추었다.

“이상하잖아요, 내가 올가 경이랑 이런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는 건.”

입 밖으로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올가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잔잔한 미소로 바네사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있을 리 없는 평화. 바네사는 스텝을 밟으며, 올가 파블리첸코가 춤을 출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춤은커녕, 그는 전장을 지휘하기에 바쁜 사람인데. 아는 것 하나 없는 그의 옛날에, 이런 무도회가 있었을까.

“우리가 함께 춤 출 일이 있을까요?”

올가는 한 발짝 물러나, 바네사에게 인사했다. 춤의 마지막 장. 바네사도 치마를 가볍게 쥐어 올리고 인사를 했다. 모든 용건이 끝났다는 것처럼 올가는 그대로 뒤를 돌고 캄캄한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매정한 꿈이었다. 실재하지 않는 것들만 보여주는 주제에 원하는 것은 돌려주지 않는다.

발을 내딛었다. 또각, 구두 소리가 선명하게 복도에 울렸다.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대리석 바닥을 밟은 구둣발이 점점 빠른 소리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 이름을 부르고, 그가 자신을 돌아보기 전에 손을 잡자, 모든 게 정적이었다. 얼마 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숨이 찼다.

“올가 경!”

이번에는 제대로 목소리가 나왔다. 그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숨을 고르며 당황한 얼굴을 한 올가를 마주보았다. 분명 꿈일 텐데 왜 그 손에 잡힌 굳은살이며 물집까지 생생한 걸까. 그렇지만 지금 흐르는 눈물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바네사는 벅찬 숨을 내쉬며 말했다.

“언젠가 다시 같이 춤 춰주세요.”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비스듬히 내려온 달빛 사이로 올라간 입 꼬리를 보았을 뿐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언젠가, 반드시.”

꿈보다 선명한 평화 아래에서 그러겠다고,

바네사는 꿈속에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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