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알고 있겠지만, 마마는 말이지이."
미케지마 마다라는 제 앞에 서 있는 이를 바라본다. 저보다 작은 키에 얼굴까지 숙이고 있어 그의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가 어떤 표정인지 겨우 볼 수 있었다. 그 사이로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게 잘 보여 더 안타까울 뿐이었지만. 그런 표정을 한 이에게 잔인한 말을 하는 건 내키지 않은 일이다. 것도 상대가 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악의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고, 제가 지키고 싶은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따지자면 그도 제가 지키고 싶은 사람이지 연을 끊고 적대시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게 비록 잔인한 말이라 해도 해야 하는 때가 있었다. 저는 그런 사람이지 않은가. 이런 말쯤이야, 별 거 아니다. 상대에게 있어 나쁜 사람으로 남더라도. 얼굴을 보면 아무런 말도 못할까 걱정하였는데, 다행스러운 일인지 제 말을 듣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건 상대방이었다. 지금 제 스스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다행이야.
미케지마 마다라를 앞에 둔 이는 히라이 유키나였다. 히라이 유키나는 그와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마다라가 여행을 다니며 빛나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 중에 꼭 그의 모습이 있었고, 마다라 또한 그게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했었다. 마다라가 같이 다니길 권했다기보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마다라는 그게 유키나가 만들어낸 필연이라는 걸 알고 있다.- 유키나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닌 쪽에 가까웠다. 지금은 이곳에 머물며 저는 저대로 아이돌 활동을, 그는 그대로 프로듀서이자 연주가의 삶을 살고 있어 마주하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연락을 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니어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단정짓기도 했었고. 그런 사이가 어떤 사이냐면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하는 선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을 하거나 매일 얼굴을 보는 게 당연한 사이. 마다라에게 있어 유키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하물며 먼 발치에서 바라보게 되는 그 아이마저도 하루도 빠짐없이 얼굴을 보길 바란 적이 없는데. 그 아이가 아닌 히라이 유키나를 제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니라 단정지었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우선인 사이를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조금이나마 사심이 있었으니까. 더욱 그런 사이가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말하는 꼴이었다. 갈팡질팡하고 싶지 않았고, 그 아이가 아니니 대역을 부탁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유키나도 마다라에게 있어 지키고 싶은 존재였다. 그는 제게 있어서 정말 좋은 친구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그를 거절한다고 해서 지키지 않을 생각은 전혀 아니니까.
"사랑해달라고… 한 적 없어요."
히라이 유키나는 제 생각보다 더 딱딱한 말투를 쓰는 사람이었다. 제가 좋은 아침~! 하며 활기차게 얘기해도 그가 가진 무표정으로 안녕하십니까, 미케지마 씨라며 냉정하게 대답하는 이였다. 그러니 지금 그의 말투가 조금이나마 풀어졌다는 건 그만큼 간절하다는 말이었다. 그 간절함을 모르지 않는다. 바라는 마음에 보답해줄 수 없을 뿐.
"하지만 분명 바라는 건 있잖아아?"
"적어도 그 아이한테… 가지 말아달라고 했었죠."
"…응, 난 그 아이한테도 가지 않을 거야."
"그럼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요? 저는… 저는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는데."
절 사랑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그가 겨우겨우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이 제 시선에 들어온다. 흘리는 눈물을 보일 수 없으니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만큼 자존심도 센 사람이었다. 이를 알기에 시선을 마주하며 제 진심을 전할 수 없었다.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알고 있으니 더더욱. 바닥에 남는 얼룩한 자국은 제가 닦아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원망할 거예요."
"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은거얼?"
"웃지 마세요."
"응, 그래도 마마의 마음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할게."
어느새 유키나는 손으로 제 눈가를 누르고 있었다. 다정하고 상냥한 아이. 그 아이도 마찬가지지만, 제 앞에 있는 이도 그러했다. 제 마음을 알기에 억지로 손에 쥐려 한 적 없었고, 바라보고, 기다리고, 마주하길 기다렸다. 그게 참 고마웠는데. 하지만 제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알면서도 언제까지고 내버려둘 수 없는 노릇이다. 마다라는 그를 확실하게 거절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지 않으면, 저는 유키나를 보며 그 아이를 대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키나의 머리색은 유독 짙은 검은색이라 어딜 봐서도 갈색빛을 찾기 어려웠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어떠한 부분도 그 아이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유키나에게서 그 아이를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짧은 머리로 잘라보는게 어때? 라며 길이를 맞춘다거나 가끔은 이런 옷은 어때? 하며 그 아이가 입었던 옷을 추천한다거나. 그만큼 나쁜 짓이 어디 있을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상대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키나가 거절할 것 같지도 않았다. 제가 그를 천천히 제가 사랑하는 이처럼 만든다고 해도 유키나는 받아들였을 일이었다. 그는 제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길러온 머리를 잘랐을 것이며, 옷 스타일을 바꾸고 하다못해 염색까지 할 만한 이였다. 저는 그렇게까지 곁에 있기 좋은 사람이 아닌데도. 그러니 당연한 결과이다. 제가 유키나의 마음을 거절하는 건. 유키나는 그 아이를 대신할 수 없다. 이마저도 한참을 고민하고 내린 당연한 결론이었다.
내가 널 사랑했다면, 그 눈물에 마음이 아팠을까.
내가 널 사랑했다면, 네 마음에 기뻐했을까.
내가 널 사랑하는 게 우리에게 있어 가장 좋은 결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뜻대로 움직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도저히 너를 사랑할 수 없었다. 한참 말이 없던 이는 고개를 들더니 다시 저를 마주했다. 표정에 어떠한 감정을 참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붉어진 눈가도, 내뱉고 싶지 않아 꾹 다물고 있는 입마저도. 그 고통을 모를 수가 없다. 어쩌면 저도 언젠가 겪게 될 아픔인지도 몰랐다. 아직은 알 수 없는, 모르는 척 하는 결말. 그의 표정에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으나 도저히 사과하지 않을수도 없었다.
미안해, 널 사랑하지 않아서.
대놓고 말로 내뱉지 않았다. 그래도 제 표정이 그렇게 말했을 것을 마다라는 알고 있었다. 원망하는 말을 좀 더 들을 줄 알았는데. 유키나는 허리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 멀어졌다.
그가 남긴 말은 딱 하나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다라는 한동안 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 마음에 보답할 수 없었고, 제 곁에 머문 너를 알고도 끝내 거절하는 나인데. 너에게도 나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은 내 욕심을. 그래, 나를 지켜본 너이기에 알 수 있는 거겠지. 좋은 사람을 놓쳤다는 건 알고 있다. 누군가 저를 보며 바보같다 말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러니 너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는 없어도,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마마는 뭐든 할 수 있을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