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urprise.png

혈계전선

레오나르도 워치 X 유진 헤스필드

—Pngtree—red ribbon_4447551.png

 

 

“레오, 생일 축하해.”

“어… 고마워요. 내 생일을 알고 있었어요?”

 

 

레오는 제 손에 쥐어진 작은 상자를 바라보더니 문득 생각난 듯 유진을 바라보았다. 크라우스 씨나 스티븐 씨라면 제 생일을 알고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외에 사람이라면 적어도 레오나르도 입으로 생일이 어느 날짜라고 말한 기억은 없었다. 주변에 물어봤으려나? 유진은 레오에 대해 곧잘 물어본다고 했으니 이번에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타인이 저에 대해 궁금해하고, 여러가지 물어본다는 건 레오에게 있어 매번 어색한 일이었다. 평범한 소년에게 누군가 주의 깊은 관심을 갖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응, 하지만 유진이라면 역시 물어봤겠지. 정확한 답을 듣기 전에 결론을 지은 레오의 귀로 들린 답은, 정작 레오가 결론을 내린 답과 전혀 다른 답이었다.

 

 

“응? 레오, 그런 걸 물으면 곤란한데…”

“예? 곤란할 것까지 있나요?”

“그야, 왠지 내가 스토…”

“그런 생각 안 했어요!!!!”

“그래?”

 

 

정말이지, 유진은 짓궂다고요. 레오는 선물을 소중히 들면서도 상대를 향해 입을 비죽였다. 정작 스토킹이란 단어도 농담 삼아 내뱉은 상대는 레오가 건 태클에 하하, 소리내어 웃을 뿐이었다. 재프 씨였으면 말로 거는 태클로 넘어가지 않았을 일이다. 몇 번이고 통하지 않았지만, 주먹을 쥐고 그의 어깨를 때렸을 테고, 그보다 자신한테 유진이 내뱉는 류의 농담을 했을리가 없었다. 그러니 레오에게 있어 유진은 유일한 상대였다. 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유일한 사람, 아슬한 농담을 하는 유일한 사람, 그런 농담에도 자신은 얼굴 붉히며 대꾸하는 것이 전부인 유일한 사람. 그게 그렇게 두근거리냐 묻는다면, 농담에 설레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이에게 듣는 말이라 뭘 들어도 즐거운 쪽이었다. 스토킹 같은 범죄에 설렘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란 강한 믿음도 있었고. 레오는 상자에 달린 작은 리본을 바라보았다.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상자는, 무게가 가벼워 안에 뭐가 들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았는데요.”

“내가 맨 처음으로 축하해주고 싶었어. 아침부터 보는 건 부담스러워?”

“그런 말까지는 안 했어요…”

 

 

유진이 작은 상자를 들고 레오의 집 문을 두드린 건, 레오가 출근을 위해 이제 막 잠에서 깬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생일이란 이유로 제 집 앞까지 찾아올 줄 몰랐던 레오는 문을 연 채 유진이 손을 여러 번 흔들고나서야 꿈도 아니고, 제 꼴이 손님맞이에 어울리는 꼴도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잠에서 덜 깬 얼굴 같은 건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누구에게도 보이기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레오는 잠시만요! 하고 다급히 문을 닫고, 씻는 것과 동시에 옷을 챙긴 다음에 다시 유진을 맞이하였다. 그때까지도 유진은 마냥 웃는 낯이었다.

 

 

“그럼 얼른 열어 봐.”

 

 

유진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상자를 주는 순간에도, 지금도. 제 선물이 기대되지 않냐는 듯 재촉하는 모습을 보며 레오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무게가 가벼웠으니 작은 악세사리인가? 아니면 손수건이라거나. 생각보다 더 뜬금 없는 물건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워낙 상대가 엉뚱한 사람이니 어떤 물건이 나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뭐든 좋을 것이다. 좋아하는 상대가 주는 선물이라면 그게 뭐든, 좋을 수밖에 없었다. 살짝 붉어진 얼굴을 한 레오가 상자를 여는 순간,

 

 

“으아악!”

“아하하~”

 

 

상자에서는 말랑한 공이 튀어나와 그대로 레오의 얼굴을 툭, 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예상했다는 듯 유진은 옆에서 크게 소리내어 웃고 있었다. 얼마나 크게 웃는지, 레오가 선물상자에 정신이 팔려있지 않았다면 저렇게 큰소리로 웃는 건 처음 봤다고 말할 일이었다.

 

 

“이, 이게 뭐예요?!”

“미안, 놀랐지?”

“당연히 놀라죠!”

“응, 레오는 놀리는 재미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됐어요… 전혀 칭찬 아니거든요.”

“아하하, 미안해. 제일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던 건 사실이야. 그런데, 으음…”

“그런데?”

“선물은 다 같이 주기로 해서, 대신 다른 걸 준비했어.”

“대신 준비한 게 이런 건가요…”

 

 

말랑한 공은 상자에 붙은 끈과 이어진 상태였다. 레오는 작게 한숨 쉬더니 튀어나온 공을 다시 넣고 그대로 상자를 덮었다. 짓궂은 농담에 장난스런 선물까지, 그가 장난스런 사람인 건 알고 있었으나 하루에 연달아 당하는 장난은 재프 못지 않은 솜씨였다. 그때마다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제 반응에도 여전히 웃는 얼굴을 보면 정작 자신도 그에게 쓴소리는 하지 못 하는 게 레오였다. 그래도 다른 걸 준비했다는 건…

 

 

“생일 선물이 따로 있다는 거네요?”

“응, 그렇지. 근데 그것도 가져. 나쁘지 않잖아.”

“정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레오는 말을 하면서도 작은 상자를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말랑한 공을 준비했다는 건 나름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준 선물을 버리는 게 내키지도 않았고, 아마, 제 예상이 맞다면 상대는 이 선물을 챙겨 넣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예상했듯이, 레오가 주머니에 넣는 걸 보고나서야 유진은 발걸음을 돌렸다. 선물은 사무실에 오면 줄게.

 

 

 

“그러니 레오, 늦지 않게 사무실로 와.”

 

 

 

손을 흔들거리며 사라지는 유진을 보고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 아침에 일어났으니 출근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그냥 같이 출근해도 좋았을텐데…”

 

 

아쉬움을 담은 채 레오 또한 발걸음을 옮겼다.

 

 

*

 

 

 

“생일 축하해, 레오!”

“축하한다네, 레오나르도 군.”

“하하, 다들 감사해요.”

 

 

 

여유시간이 남았던 만큼 다이너에 들려 대화를 하고 사무실에 들른 참이었다. 레오의 품에는 오늘 자신의 생일이라고 말하자 비비안이 왜 이제 말하냐며 안겨준 오늘의 점심이 있었다. 라이브라 사무실 문을 열자 터지는 폭죽 소리와 함께 축하한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침에 유진이 방문하지 않았다면 분명 크게 놀랐겠지만, 자신의 생일인 건 이미 알고 있었고, 선물은 다같이 준비했다는 말에 어느 정도 깜짝 파티를 예상할 수 있었다. 레오에게는 터지는 폭죽소리와 쏟아진 축하에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덤덤하게 감사한다는 말을 남기는 레오를 보며 놀란 건 라이브라였다. 생각보다 덜 놀라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K.K가 나서서 레오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내뱉는 목소리는 투덜거림이었다.

 

 

 

“아~! 들었어, 레오찌. 유진이 전부 말해줬다면서?”

“억울하네… 난 다들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걸 말한 게 문제인 거야, 멍청아.”

“선물도 준비하지 않은 바보는 발언권 없네요.”

“준비했거든? 근데 갑자기 사라져서…”

“재프 씨, 혹시 그거…”

 

 

 

레오는 아침에 유진한테 받았던 작은 상자를 꺼내었다. 이를 본 재프는 눈이 커지며,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어떻게 미리 가지고 있었냐며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레오가 유진을 바라보자 유진은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그렇지. 들고 있던 상자는 생일에 장난을 칠 생각이었던 재프에게서 가져온 모양이었다. 재프 씨가 말랑한 공을 넣었을 리가 없으니 그 부분도 바꾼건가? 선물을 준비해줘서 감사해야하는건지… 어찌됐든, 레오는 머리 위에 쌓인 폭죽을 떼어내며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각자 준비한 선물을 들고 있었고, 그들 뒤로는 탁자 위에 케이크와 찻잔이, 벽에는 커다랗게 ‘Happy Birthday’ 가랜드가 걸려 있었다. 진짜 생일 파티구나…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받는 생일축하가 얼마 만에 받는 축하인지, 그것도 이렇게 제각각인 사람들과 파티를 한다는 게 얼마나 믿기지 않는 일인지 레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불고, 축하 노래를 듣고, 선물이 품 속에 쌓여 갈 때쯤, 유진이 레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레오,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고마워요, 유진.”

 

 

인사는 아침에 받았는데… 레오는 쑥스럽다는 얼굴로 제 볼을 긁적였다.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은 다음인지 왠지 모르게 아침에 받았던 축하보다 더 많은 감동이 몰려온 기분이었다. 유진이 레오를 향해 손을 내밀자 레오는 자연스럽게 내민 손에 제 손을 올렸다.

 

 

“음… 여기, 선물이야.”

“…팔찌?”

“행운의 끈 팔찌. 끊어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나.”

 

 

손을 올릴 필요는 없었는데. 유진은 레오가 내민 손목에 갈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끈팔찌를 달아주었다. 그리고 다른 손을 들어 제 손목에 낀 똑같은 색의 팔찌를 보여주었다.

 

 

“나랑 커플이야, 괜찮지?”

“네? 어, 네… …”

“얼굴이 더 빨개졌네, 레오.”

 

 

 

*

 

 

 

“저, 유진. 생일이 언제예요?”

“내 생일을 챙겨주려고?”

“적어도 받은 만큼 해줘야죠.”

“음… 그럼 레오가 알아볼래?”

“네?”

“내 뒷조사를 하면…”

“안 해요, 그런 거!”

 

 

익숙하게 들려온 농담에 레오는 또다시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하여튼, 유진과 있으면 제 얼굴과 목소리가 가만 있는 날이 없었다. 생일 파티는 어느새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어 누군가는 임무를 가거나 어른들은 술을 마시는 등 라이브라에서 늘 보내던 파티처럼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그중에서 똑같은 팔찌를 찬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 단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하하, 그래?”

“정말… 매번 위험한 소리만 한다니까요.”

“그런가? 헬살렘즈 롯에서 살면 뭐가 위험한 건지 잘 가늠이 되지 않더라.”

“…뒷조사도, 스토킹도 안 해요. 유진도 저에 대해 그럴 거라 믿고 있고요.”

“음… …그치만 말을 고치지 않을 거야.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줘, 레오.”

 

 

 

유진은 고개를 기울여 저보다 좀 더 큰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가까워진 거리에 레오는 절로 얼굴을 붉혔으나 피하지 않았다. 그래도 당황스런 마음을 숨기기 힘들었는지 유진의 말에 아, 알았어요… 하고 대놓고 말을 더듬었다. 아까도 그렇고… 커플이라거나, 어떻게 매번 서슴없이 다가올 수 있는 걸까. 레오는 뭔가 결심한 듯 가까이 다가온 얼굴을 향해 저도 고개를 숙였다. 좀 더 로맨틱한 자세라거나 말이 있었을 텐데도, 이미 붉어질대로 붉어진 얼굴은 그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아서 가까워지겠다는 생각 외에 다른 걸 할 수 없었다.

 

 

“엄청난 건 준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준비할게요…!”

“응, 좋아. 근데 이렇게 가까이서 말해야 해?”

“아, 이건… 그게, 그러니까… …”

“이러다 닿을 것 같은데…”

“예?”

 

 

레오는 뒤늦게서야 자신이 그에게 다짜고짜 얼굴이 내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까워지겠다는 건 제 생각이었지 유진도 동의한 건 아니었다. 시선을 굴리며 살펴보자 유진의 말대로 누군가 뒤에서 살짝 밀어도 곧장 입술을 부딪히기 좋은 거리가 그들 사이를 자리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가까운 눈빛과 숨결에 레오는 견디지 못하고, 몸을 천천히 뒤로 움직이더니… 결국 자신이 주인공인 생일파티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죄, 죄송해요…!!!”

 

“…너무 놀리지 마, 유진.”

“아니, 이건 오해인데요. 그럴 생각은 전혀…”

 

 

이를 보던 스티븐이 한마디를 내뱉었고, 이후로 레오가 뛰쳐나가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한 건 라이브라의 대대적인 놀림거리로 자리 잡았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