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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뻗으면 잡아줄래?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미 난 네가 손을 뻗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걸까. 아직 네겐 내가 느껴지지 않는 걸까.
    시노미야 사츠키와의 작별을 계기로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정확하게는 나츠키의 변화로 인해 우리 모두가 영향을 받았다는 쪽이 더욱 가까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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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있을게요."

    그랬다. 혼자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날이 많아진 것이다. 활동이 마무리된 뒤의 시기라 연습은 이해한다고 쳐도, 모두와 함께 지내면서 그렇게 혼자 따로 겉도는 일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연습 때 혼자 다른 생각을 하다가 다른 멤버들한테 주의를 받는다거나, 식사를 거른다거나, 혼자 몸을 웅크리고 아무 말 없이 있다거나. 그건 연인인 시호와 함께 있을 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멤버들과 있을 때는 그래도 덜하던 것이, 그녀와 함께 있는 집에서는 심해진다는 것뿐.

    "시노미야와의 일…. 괜찮나?"
    "…. 난 괜찮아. 집에서의 일은 나 혼자 해결하면 될 문제니까. 그룹활동만 괜찮다면."
    "어제도 그럼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있었던 겁니까?"
    "뭐, 그렇지."

    멤버들이 이렇게 매일 물어보러 오는 게 며칠 째지. 집에서도 따로 잔 게 며칠 째였더라. 그녀가 늘 나츠키를 챙기려 다가가도, 그가 늘 혼자 있고 싶어 해서 따로 소파에서 잠들거나 책상 위에서 일을 하다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언젠가 하루쯤은 그를 위해 그녀가 화를 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게 가능하면 빨라야 한다는 사실도. 그러면서도 그가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녀를 끊임없이 주저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말을 꼭 꺼내야지. 그녀는 그렇게 다짐하고는 집에 서둘러 들어가 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붙잡을 요량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전에도 그래왔듯 이번에도 그는 '미안해요, 혼자 있고 싶어요….' 하는 말을 꺼내고 그녀의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돌렸다. 

    "나츠키."
    "…."
    "정말 저랑 아무 얘기도 안 해도 괜찮아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조심히 꺼내는 그녀의 말에 살짝 그의 몸이 움찔거렸다. 

    "…. 괜찮아요. 정말로."
    "나츠키."
    "…. 전…. 나루쨩이 절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그가 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단 걸 눈치챈 그녀가 급히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그가 그녀의 손을 뿌리친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 있는 반응에 놀란 듯 무의식적으로 '앗,' 하는 소리를 내자 그가 그간 참고 있었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정말로 괜찮다고…!"
    "…!"
    "난 이제 혼자 남았단 말이야…. 이제 손을 뻗어도 날 잡아줄 존재가 없어, 이제 모든 건 다 저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 한단 말이에요. 근데 전…. 전 그게 너무 불안하고, 나루쨩은 이런 절 싫어하겠죠…. 나루쨩은 제가 삿쨩처럼 어른스러운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잖아요. 이런 전 만족스럽지 않을 거잖아요! …. 삿쨩이라면, 이렇게 행동하진 않았겠지. 나루쨩도 역시…. 삿쨩 같은 사람이 좋죠? 그렇겠죠…. 그래서 혼자…. 혼자 짊어지겠다는데 대체 왜 붙잡아요, 왜!"
    "나츠키…."
    "놔요. 혼자 있게 해 주세요…. 부탁이야…."

    하지만 그의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어 줄 그녀도 아니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걸음을 옮기자 그녀가 급히 다시 그의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가 약간의 화를 담아 다시 자신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화를 내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담아 입을 열었다.

    "시노미야 나츠키."
    "…!"

    이전까지 한 번도 부른 적 없던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자, 그도 적잖이 놀란 듯했다. 그의 손목을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 자신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단 걸 알고 있었다. 막상 이름을 내뱉고 나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는데. 몇 초간, 그녀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라면, 시노미야 사츠키라면 이런 내게 어떤 조언을 해 줬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던 것이었지만, 막상 다가오니 그 모든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말뿐이었다.

    "할 말 끝났어?"
    "…."
    "그럼 내가 그에 관해서 할 말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겠네. 알면서 피하는 거잖아. 맞지."
    "…."
    "앉아. 오늘은 나도 봐줄 생각 없어."
    "나ㄹ…."
    "앉으란 말 안 들려?!"

    그렇게 강제로 그를 소파 위에 앉힌 그녀는 테이블에 있던 무드등을 켜고, 집 안의 모든 불을 끈 뒤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에도, 그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는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릴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그렇게 한참 그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곤, 그의 무릎 위에 마주 보며 앉았다. 그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제서야 그녀는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내 눈 피하지 마. 피하는 순간부터 우린 끝이야."
    "…!"
    "내 말 알아들어?"
    "…. 응…."

    그의 대답을 기어코 받아낸 그녀는 표정을 풀고 그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아래로 내려가며 어깨, 팔을 거쳐 마지막은 손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의 양손을 잡은 그녀는 손을 자신의 뒤로 가져갔다. 그가 그녀의 의도를 이해한 듯 그녀를 끌어안자, 그녀는 잡던 손을 풀고 다시 그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지만 상냥하게.

    "이해했어? 난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어. 네가 손을 뻗지 않아도 충분히 닿을 거리에 있단 얘기야. 난 여기 있어. 여기에…. 네 모든 감정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네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도록…. 여기서 널 보고 있는데, 네게 난 안 보이는구나. 네게 난 어디에 있을까. 때론 가까운 곳을 봐줬으면 하는데."
    "…."
    "그리고, 사츠키에 대해서. 나는 나츠키와 사츠키를 비교한 적 없어. 그리고 나츠키도 그렇게 해주길 원해. 부디 사츠키와 자신을 비교하지 말아 줘…. 나츠키는 나츠키인 것에서 의미가 있는 거야. 사츠키도 그걸 바랄 거야. 이러면 내가 싫어하겠지, 나츠키가 사츠키처럼 더 어른스럽게 행동하길 바라고 있겠지. 하는 생각은 하지 말아 줘…. 난 그 어떤 너라도 사랑하고 있어. 내가 사랑하는 건 시노미야 나츠키. 그 자체야."

    그녀가 무드등 빛에 의존해 그를 바라본다. 울면서도 눈을 떼지 말라는 그녀의 말 때문인지,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던 그의 눈가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그녀가 말을 멈추고 그의 눈물을 조심스레 손으로 닦아내자 그가 울음을 참아내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하지만…. 나루쨩은, 이런 어리고 약한 저는 안 좋아할 거잖아요…. 그리고 이런 제가 싫어지면…. 저는, 저는…."
    "…. 내가 널 안 좋아한다고 한 적 있어?"
    "아뇨…. 없어요."
    "응. 난 한 번도 네가 싫다고 한 적 없어. 여기 봐. 지금도 난 네 곁에 있잖아. 난 너라는 하나의 세계를 사랑하는 거야. 그 세계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 너라는 것 자체에 그 의미가 있으니까. 난 너 그 자체를 사랑하는 거야…. 이건 정말이야. 네가 없는 세계라면, 나는 그게 어떤 곳이든 그곳에서 살 이유가 없어."
    "…."
    "혼자서 불안해하지 마…. 혼자 모든 걸 다 끌어안지 말아 줘, 내가 여기 있잖아…. 응?"

    그가 고개를 끄덕인 걸 확인한 그녀가 그를 꼬옥 껴안았다. 응, 들어줘서 고마워. 그렇게 등을 천천히 토닥이고는 다시 손을 풀자, 그도 그녀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었다. 그녀가 그의 입술에 짧게 입 맞추곤, 그의 무릎에서 내려온다.

    "쓴소리해서 미안해요. 아마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하겠죠? 잘 자요, 내일 연습 끝나고 만나요."
    "잠깐만…!"
    "…?"
    "가지 말아요…. 가지 마…."

    그 한 마디에,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녀의 손목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마 그만큼 자신을 놓지 말아 달라는 신호였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다시 돌아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손을 잡고 그를 올려다 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츠키."
    "응…."
    "사츠키와 마찬가지로, 저도 나츠키가 그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그리고 제가 나츠키의 모든 부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머리로 아는 거 말고. 마음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그 말을 마치며, 그녀가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그가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자, 그녀가 더욱 가까이 다가가 그가 얹은 손등 위에 입을 맞췄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다시 그의 눈으로 시선을 옮긴다.

    "응. 여기서 알아줬으면 좋겠단 얘기예요."

    그날 밤, 집 안에는 그의 울음소리와 그녀의 '괜찮아, 괜찮아….' 하는 소리만이 그 공간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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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바빠? 나츠키가 연습 도중에 쓰러져서 지금 의무실이야. 보자마자 바로 와!]

 

 


    쇼의 연락을 받고 급히 뛰어왔다. 아침부터 그다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단 걸 알고 있었는데. 참 바보 같지. 어찌 되든 집에 있으라고 해야 했는데. 굳이 나가겠다고 하는 그를 말리지 못했다. 그 와중에 회의가 있어 연락을 받은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연락을 봐 버렸다. 그 한 시간 동안 일이 생긴 걸 몰랐다는 그 사실이 더욱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도착하고 보인 건 깨어있는 그와, 그와 함께 있는 멤버들이었다. 다행이야,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을 잡자, 그가 날 끌어안고선 급히 집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여기가 갑갑했던 거겠지. 

    "괜찮아요?"
    "집에 갈래요…. 가고 싶어…."
    "지금 그 상태로 어딜 가겠다는 건데…. 지금 열도 엄청 나잖아.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응?"
    "…. 그래도…."
    "다행인 건,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는 거다. 스트레스 누적으로 쓰러진 것 같다고 하는군."
    "…."

    마사토의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그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렌이 내 차키를 받아들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모두의 도움으로 집에 도착해 침대 위에 누운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밖은 까만 밤이 되어 있었다. 늘 창 너머로 보이던 달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진 하늘이 왠지 지금의 그와 닮았다.
    분명 잠에 빠져들 때는 나츠키를 먼저 눕히고 그 옆에 살짝 누워서 잠들었던 것 같은데. 깨어나보니 그가 내 품에 안긴 채 잠들어 있었다. 아마 중간에 깬 그가 옆에서 잠든 날 발견하고는 껴안았던 거겠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고 시간을 확인했다. 쇼의 부재중 전화 알림이 떠 있었다.

    "아…. 미안. 잠들어 버려서. 전화했었네."
    [괜찮아. 나츠키는?]
    "열도 어느 정도 내렸고, 지금은 옆에서 자고 있어."
    [아마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력을 많이 쓴 탓이겠지. 언젠가 한 번은 꼭 있었어야 하는 일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
    […. 그렇게 신경 쓰여?]
    "….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아서."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와 통화를 마치고, 품에 안겨 자고 있는 그를 다시 끌어안았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잘 하는 일일까. 사츠키도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까. 그에 대한 대답을 듣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 혼자 둬서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
    "하지만 나츠키…. 나츠키는 혼자가 아니야. 사츠키는 널 떠난 게 아니란 말이야…. 줄곧 있어 온 것처럼,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 있을 텐데…. 아직 그를 못 찾았구나. 네게 그는 어디 있을까…. 언제쯤 네가 그걸 알아줄까…."

    그가 깨어있을 땐 차마 못 꺼낸 이야기를 꺼낸다. 그것만큼은 그가 스스로 깨달아주기를 바랐다. 다른 건 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있겠지만, 그것만큼은 내가 절대 대신해줄 수 없을 거란 걸 알아서. 

 

    내가 더 잘 하지 않으면, 하고 다짐하는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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