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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뻗으면 잡아줄래.

 

 

"언제든지."

 

한여름의 햇살 가운데에 있던 너는 그리 답했다.

그저 일어나는 걸 도와달라는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킨 뒤에도 손을 놓지 않는 너에 그제야 그 대답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

 

 

. . .

 

 

사박, 나뭇잎을 밟고 풀을 헤쳐오는 소리가 얼마쯤 울렸을까. 주위를 둘러보던 여자는 나무 뒤로 보이는 하얀 옷자락에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다가갔다.

 

'…자나?'

 

나무 아래에서 가까이 본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와도 일어나지 않은 걸 보면 꽤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이래서 불러도 못 들은 거구나. 예전부터 땡땡이를 밥 먹듯이 하고 나무 위에서 낮잠을 즐기던 그였기에 숲속에서 잠들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긴토키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옆에 자리를 잡은 시즈카는 나무에 몸을 기대었다.

 

시간이 얼마 정도 지났을까. 흐릿하게 뜨인 눈을 몇 번 깜빡인 긴토키는 고개를 들었다.

 

"일어났어?"

"…어. 왔냐."

 

나긋한 목소리에 시선을 향하자 웃음을 띤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잠을 떨쳐내려는 듯 어깨와 목을 푼 긴토키는 느긋하게 하품을 했다.

 

"편하게 누워서 자지 힘들게 여기까지 와."

 

상처도 덜 나았으면서. 건네주는 물을 받아든 긴토키는 마른 목을 축이고는 나무에 몸을 기대었다. 허리께에 감긴 붕대로 향하는 시선에 긴토키는 귀찮다는 듯이 귀를 후볐다.

 

"잔소리 좀 그만해. 환자한텐 안정이 필수라는 거 몰라?"

"알고 있으면 얌전히 좀 있어."

"이 정도는 침 바르면 나아."

 

어디서 난 자신감인지 허세를 부리는 긴토키에도 시즈카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어련하겠어. 허리를 감아오는 팔과 함께 귓가에서 흰 머리카락이 아른거렸다.

 

"나 없다고 꼴이 말이 아니더구만 뭐."

 

대장이 부상을 입었더라도 자잘한 전투는 일어난다. 백야차라는 전력이 빠진 지금 이쪽의 피해가 크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단순한 전력이 아닌 군의 리더격인 긴토키였기에 큰 부상을 입은 건 실수였고 본인 또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전쟁 영웅이라는, 대장이라 불리는 그 이름의 무게를 짊어진 그녀였기에 덤덤히 말하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알았다.

 

"괜찮아."

 

그 무게를 짊어지는 건 긴토키의 몫이지만 그렇다고 혼자일 필요는 없었다. 무게를 덜을 수 없다면 적어도 더 이상 짊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긴토키가 없더라도 무너질 애들이 아니니까. 빈자리는 우리가 메꿀 수 있어."

 

어릴 적부터 오래 본 사이였기에 그만큼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았다. 어떨 때에 힘들어하는지, 힘들 때에는 어떤 표정을 짓는가 하는 사소한 버릇도 잘 알기에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기에 안 힘든 척 괜찮은 척 서로를 속이려는 꾀만 늘어났다.

 

"다쳤을 때는 숨기지 말고 얌전히 쉬는 게 도와주는 거야."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아무 말이 없던 긴토키는 시즈카의 볼을 죽 잡아 늘였다. 사돈 남 말 하시네. 다른 사람에게서라면 몰라도 시즈카에게서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아프다며 볼을 문지르는 시즈카에 긴토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건 말 안 해도 알고 있걸랑."

"좀 더 믿어주면 좋겠다는 거지."

"충분히 믿고 있어."

 

전쟁터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상대가 몇이나 있을까. 긴토키는 자신의 목숨을 맡길 정도로 동료들을 신뢰했다. 비록 그 신뢰가 다른 이름의 짐이 되더라도 말이다. 시즈카는 무언가 말을 하려던 걸 관두고 긴토키에게 몸을 기대었다. 기대어오는 무게에 긴토키 또한 눈을 감고는 말이 없었다.

 

거창한 위로나 행동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저 눈짓 하나,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상대방과 지내는 사소한 일상이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으니까.

 

그래. 그거면 충분했다. 귓가에 울리는 매미의 울음소리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 박동에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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