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32.png

 

 손가락 사이로 네 모습이 보였다.

‘무슨 얘기를 저렇게 오래 하는 걸까?’

 위련은 눈을 깜빡였다. 손으로 눈가를 덮고 있던 위련은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안화를 슬쩍 바라보고 있었다. 드물게도 심각한 표정을 드러낸 그를 눈에 담던 위련은 마른세수하듯 앞머리를 쓸어올린 뒤 자연스럽게 손을 내렸다.
 주변 시야가 훤히 트이자 안화와 그의 대화 상대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베이지색에 가벼운 정장 차림인 상대는 안화의 직장동료였다. 물론 중앙청이 아닌 원래 직업 쪽. 업무와 관련된 일로 급히 찾아와 지금 30분 넘게 대화하고 있었다.

‘중앙청 일도 많은데 왜 안 그만둘까?’

 중앙청 급여가 적은 것도 아니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위련은 손가락으로 다른 손등을 두드렸다. 물론 원래 직업과 중앙청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신기사는 많았다. 흑문 사건이 갑작스레 터진 만큼 직업인이 신기사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신기사의 경우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업무량은 사정을 고려해 할당되었으니까. 다만 안화는 앙투아네트와 더불어 중앙청을 지지하고 있는 기둥이라 일컬어질 만큼 남다른 업무량을 가졌다. 다른 이들은 가히 따라 해볼 수도 없는, 신의 두뇌라고 불리는 자만이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위련은 그의 사무실에 쌓여있는 종이 더미를 떠올렸다.


 안화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흑문이 사라진 후를 대비해서일까? 애초에 중앙청은 흑문과 이계 몬스터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니, 흑문이 사라진다면 중앙청도 사라질 터였다.
 한번 물꼬를 틀자 물 흐르듯 자연스레 사사로운 생각이 잇달아 떠오른 위련은 눈을 감았다. 흑문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안화에게 저는 그저 지휘사, 흑문에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인물a일 뿐이니 이 매정한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릴까.
 그사이 상대를 적당히 배웅한 안화가 돌아왔다. 그는 위련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류 더미를 잡았다. 그가 “자지 말고 일해.” 라는 말을 미처 하기도 전에 위련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 작은 입에서 새어나온 말은 안화의 입장에선 꽤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안화는 흑문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어?”
“답지 않은 질문이군.”
“갑자기 궁금해서.”

 안화는 여전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럼 지금 한 번 생각해봐.”
“그런 불확실한 미래 일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데.”

 눈을 뜬 위련이 그를 흘겨봤다가 몸을 일으켰다. 안화다운 대답이었다. 그 퉁명 맞은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위련은 조용히 펜을 들었다.

“그럼 너는?”
“응?”
“흑문이 사라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위련은 손을 멈췄다. 별다른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안화는 고개를 들어 제 상사를 바라봤다.

“위련?”
“아, 미안. 네가 이 얘기를 되묻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네. 위련은 중얼거렸다. …처음? 그 단어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안화는 굳이 들추지 않았다.

“나는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 확인 해보고 싶어. 흑문이 닫히면 어떻게 변하려나 싶어서.”
“아무래도 온전히 예전처럼 돌아가긴 힘들겠지. 신기사들 문제도 있고 흑문이란 전례 없는 큰 재해를 겪은 후니. 흑문이 닫혀도 뒷수습으로 한동안 혼란스러울 거야.”

 멈춰있던 위련이 스르륵 고개를 돌려 안화와 눈을 맞췄다. 푸른 눈동자와 마주한 위련은 몇 번 눈을 깜빡이다 이내 미소지었다.

“그것도 그렇지.”

 위련이 그리 답하자 안화는 망설임 없이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를 눈에 담던 위련도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문 재해를 대비한 대피소 증설 요청에 관한 서류였다. 이제 와서 이런 건 아무 의미 없지만.

 기이한 색으로 물든 하늘은 우중충하고 뜨문뜨문 괴이한 소리가 났다. 도시 곳곳에선 종말이 다가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앙청에서 잠재우려고 손을 써도 괴이한 분위기와 맞물린 소문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졌다.


 위련은 딱히 그 소문을 막으려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이번 7일도 실패였다. 곧 종말이 다가온다.

 언제쯤 이 무의미한 발버둥을 끝낼 수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이 윤회를 지속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는 단 한 가지가 궁금했다.

 이 윤회가 끝나면 나는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저 매정한 남자에게서.

 위련은 그저 그게 궁금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