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름표22.png

제목 :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죠?

 

※ 현대 대학 AU. 드림의 원래 서사와는 관련 없습니다.

※ 가벼운 비속어

※ 제 3자 시점

 

 

 

우리 과에는 명물이 있다. 학생회장은 몰라도 이걸 모르면 공대생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미친놈. 차마 단과대 밖으로 그 이름을 내뱉기에는 감당할 수 없어, 공대 건물 내부에서만 공공연한 미친놈. 예측은커녕 생각해내기도 힘든 참신함에 엄청난 스케일, 뒷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행동력에, 공대 미스터리 괴담 절반의 당사자일지도 모른다는 괴담이 도는 미친놈.

‘그것’을 부르는 호칭은 많았다. 가장 직관적으로 특성을 나타내는 ‘미친놈’ 이나 ‘또라이’부터 어디서 듣고 나타날까 봐 ‘이름을 부를 수 없는’으로 퉁쳐지는 모호한 호칭, 비교적 접점이 적은 교수님이나 신입생들이 주로 쓰는 ‘공대 명물’까지. 그 이외에도 자잘한 별명들이 많지만, 그중에 정상적인 것이 없는 것은 확실했다.

불행히도 껍데기만은 멀쩡한 ‘또라이’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경영대 이쁜이.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확실히 잘생겼다기보다는 예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미인형이었지만, 아이돌도 아니고 그 어떤 평범한 성인 남성이 그런 별명을 반기겠는가. 티끌만한 동요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뻔뻔하게 이쁜이를 찾아대는 ‘미친놈’의 모습은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는 것을 새삼 확신하게 해줄 뿐이었다.

타칭 경영대 이쁜이, 유한성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만만치 않아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매일 같이 보고 있는 공대생들에게 그 정도면 충분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다행이라고, 심지어 줄어든 사고 횟수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시험 기간이 오기 전까지는.

시험 기간은 공대생들에게 다른 방면으로 두려움의 기간이었다. 안 그래도 미친 게 더 미쳐서 돌아다니지만 다 같이 미치는 때라 공대 전체의 경계가 흐려지는 기간. 미친놈들의 소굴이 되어버려 다른 단과대 학생들이 알아서 공대 출입을 조심하는 기간.

그런데 왜. 어째서. 경영대는 팀플의 꽃인 것이며, 거기 교수님은 하나같이 중간 대체로 조별 과제를 내주는 것이며, 그나마 미친놈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한성에게 지옥행 팀플 열차가 주어진 것이냔 말이다.

그날 공대 동기들은 진심으로 경영대를 저주하며 울었다. 유한성이 존재하기 이전의 공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어딘가에 있을 ‘미친놈’도 미치고, 지옥행 열차에서 이를 갈고 있을 우리의 희망 경영대생도 미치고, 돌아버릴 미래를 안타까워하며 술을 마시는 인간들도 미치고. 다 같이 미쳐버릴 암울한 시험 기간이 너무도 슬퍼서 울었다.

그러니까 그날 따뜻한 봄이라니 애초에 우리에게는 그런건 사치였다느니, 원래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느니 따위의 말이 나오면서 ‘미친놈’의 신입생 때 이야기로 이어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때는 파릇파릇한 1학년, 아직 ‘그놈’의 비범함을 모두 알아보지는 못했을 적. 야작 중이던 미대생들이 나무 위에 있는 새까만 무언가를 보았다는 목격담과 함께 하루 만에 교내의 모든 꽃이 져버리는 일이 있었다. 지금은 학교 괴담이 되어버린 그런 풍문이.

당시에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동기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는 얘기를 주워듣고 눈을 빛내던 ‘그놈’을. 벚꽃이 없으면 시험도 안 보는 거 아닌가, 중얼거리며 지나가던 ‘그놈’을.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있던 모든 벚꽃이 떨어졌다는 것을 듣고 환히 웃던 ‘그놈’을. 이제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 미친놈이 세상에 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들의 머릿속으로 따스한 봄 햇볕을 받으면서 사라진 벚꽃잎 대신 푸릇한 이파리를 구경하며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커플이 지나갔다. 공대 정면에서 시험 따위 개나 줘버리란 듯이 하하호호 즐겁게 노는 ‘그놈’과 결국 그를 따라 하나둘 탈주하기 시작하는 학생들도. 그 학생들 가운데 자신들이 보이는 것은 결코 착각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울었다. 머리를 스치고 가는 장면을 부정할 수 없어서, ‘그놈’-아인트와 동기인 것이 죄라며 앞으로 망해버릴 자신들의 학점을 위로하며 울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