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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욕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주 최고의 도적단 라바저(Ravagers)는 지나치게 마초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여기도 남자, 저기도 남자, 남자, 남자, 남자! 아주 남성호르몬으로 넘쳐나는 이 도적단은 환기를 해주지 않으면 질식할 정도로 수컷냄새로 가득했다.

 

“벨! 이 녀석 어딜 간 거야? 벨!”

 

하지만 이 삭막한 라바저에도 희망은 있는 법.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욘두의 목소리가 혹시 그녀에게도 들릴까봐 일부러 노래의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안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데, 이 달콤한 데이트를 방해한다고 하면 그게 욘두라도 난 용서할 수 없다.

 

“피터, 너무 시끄러운 거 아냐? 볼륨 좀 낮춰”

“응? 아아, 미안. 하지만 이거 네가 좋아하는 노래잖아, 응?”

“그건 그런데…”

 

오. 수상하다는 듯 보는 눈빛까지 사랑스럽다. 새침한 표정으로 날 위아래로 훑은 그녀는 겨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고 내가 선물로 사온 보석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설마 그녀에게 짝퉁을 선물할 리가 있나. 그녀는 나의 자랑이자 보물, 여신, 그리고 이 라바저 최고의 브레인이자 마돈나인데.

 

“어때, 벨. 마음에 들어?”

“나쁘지 않네. 웬일이야? 선물을 사오고. 나한테 미안할 짓이라도 했어?”

“그럴 리가. 그냥 네 생각나서 사온거야”

 

‘그래, 그래’ 건성으로 대답한 그녀는 가볍게 내 손을 토닥여줬다. 분명 나랑 같이 도적질 하면서 산 세월이 꽤 되었는데, 어떻게 그녀 손은 이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물론 군데군데 상처나 굳은살이 있긴 하지만, 내 손에 비하면 귀족 마님의 손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고운 손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프랑스 출신이었지. 하도 영어로 대화해서 까먹곤 하지만, 이렇게 라바저에 납치만 안 당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만큼 먼 곳에 사는 아가씨였다니.

그러고 보니 지구인들은 어떻게 생겼더라. 너무 어릴 때 납치 되서 이렇게 수염 난 아저씨가 될 때 까지 우주에 있다 보니 동족의 얼굴까지 까먹게 생겼다. 사실 외계인이라고 해도 전부 다 기괴하게 생긴 건 아니고, 지구인이랑 비슷한 외모를 가진 종족도 많다지만 어느 정도 다르게 생긴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지구를 벗어난 이후 가장 많이 본 지구인은 그녀고, 그래서 콩깍지가 씌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마 지구인들 중에서도 벨만큼 예쁜 여자는 없을 것이다. 외계인 중에서도 없는데, 지구에 있을 리가. 게다가 벨은 예쁜 것만이 다가 아니다. 만약 그녀보다 예쁜 인간이 있다 해도 그녀보다 강하고 똑똑할 리는 없다. 벨은 영리하고 예리하고…

 

“그러고 보니 말이야, 내 우주선에서 비상용으로 넣어둔 총이 한 자루 없어졌는데 말이지…”

“…어?”

“네가 가져갔지? 이거, 그게 미안해서 사온 거지?”

“……”

 

거봐. 예리하고 똑똑하잖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내 여자는 왜 이렇게 잘나서 감추고 싶은 것도 알아채는 걸까.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만, 있다면 참으로 잔인하다. 이왕 완벽하게 만들 거라면 ‘자비’라는 것도 넣어주지…

 

“아니, 그러니까 그게 내가 급해서…”

“어디서 잃어버려서 이런 걸로 때우려고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스타로드”

“아니, 잃어버렸다니. 단정 짓지 말고!”

 

잃어버린 거라면 더 비싼 걸로 사왔겠지. 아님 그냥 똑같은 걸 사왔던가. 아아. 망했다. 난 그냥 쓰다가 망가진 걸 말하기 싫어서 몰래 고친 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고 했는데.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해야…

 

“벨! 여기 있었냐!”

 

망했네. 나는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욘두를 보고 내 변명의 기회는 영원히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뭔 소리를 해도 혼나겠군. 아아, 스타로드의 비참한 미래여.

 

“잠깐 이리 와. 노바 놈들과 문제가 생겼다”

“또? 알았어요. 잠깐만. 피터, 넌 나중에 나 좀 봐”

“아니, 그러니까…”

“그럼 난 이만”

 

말투와 미소는 천사가 따로 없는데, 눈빛은 금방이라도 지옥에서 땅을 가르고 올라온 악마 같다. 진짜 난 죽었다. 무슨 핑계든 만들어서, 한 3일 동안만 피신해 있어야지. 그 정도 기간이면 빌려간 총의 수리도 다 끝났을 테니 괜찮다. 아니, 괜찮아야 한다.

잔인하게도 아름답고 완벽한 나의 마돈나는 그렇게 욘두를 따라 나가버렸다. 그녀가 화낼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겠지만, 멀어져 가는 벨의 뒷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워 날 한숨짓게 만들었다.

MCU

​피터 퀼 x 벨 마르

by. @Ruen_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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