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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 오늘 임무 말이야. 에노키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아, 또 시작이다.

롯카쿠 씨에게 임무보고를 하고 돌아오던 길, 다 같이 먹으려고 전에 사둔 과자를 들고 오던 나는 휴게실에서 들리는 키노시타의 목소리에 멈춰 섰다.

키노시타, 또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게 칭찬인 건 알지만, 나는 언제나 그의 자랑이 부담스러웠다.

 

“오늘 임무? 아. 그러고 보니 너와 에노키 단 둘이서 갔었던가”

“응, 응.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어. 에노키 덕분에 금방 돌아왔고”

 

내 덕분에? 난 그다지 한 게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키노시타는 과장이 지나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정하고 상냥하지만, 나에겐 유독 그게 더 심하다고 할까… 마치 막내딸을 모두에게 자랑하는 영감님처럼, 과장과 미담으로 가득한 칭찬을 동료들에게 늘어놓곤 한다. 오늘의 희생자는 키리시마인가… 키리시마라면 사에키처럼 내 칭찬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 주진 않을 거 같지만, 그래도 부끄럽다. 부담스럽고 부끄러워서 울 것 같다!

 

“그러니까, 이번에 잡으러 간 망자가 요괴에게 잡혀있어서 곤란한 참이었거든. 나는 설득하려고 했지만, 에노키는 망자를 괴롭히고 있는 이상 설득보다는 행동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고”

“에노키의 판단이 더 정확하군. 그래서 어떻게 했지?”

 

아아, 다행이다. 키리시마 비교적 냉정하게 들어주고 있어. 나는 감격스러움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마 저 말, 사에키가 들었으면 분명 ‘역시 에노키는 상냥하네’ 라던가 ‘망자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에노키다워’라며 칭찬을 부풀려줬을 게 분명하다. 물론 사에키의 칭찬도 싫은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키노시타는 맞장구를 쳐 줄수록 불타올라서 더 말을 늘어놓는 타입이라는 게 중요하지.

 

“그래서 에노키가 하자는 대로 하려고 했는데, 역시 위험하지 않겠나 싶어서 내가 나설까 물었거든. 그러니까 갑자기 눈을 이렇게 동그랗게 뜨고 ‘키노시타는 망자를 데리고 가야죠!’ 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데, 가 아니지! 난 당연히 에노키가 망자를 데려와서 같이 가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망자를 무사히 데려갈 때 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요괴랑 싸우겠다는 거잖아”

“그렇지. 에노키는 강하니 문제될 것 없다고 보는데”

 

잘 하고 있어요, 키리시마. 멋져, 최고야. 나는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방 밖에서 키리시마를 응원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들어가서 어깨라도 주물러주고 싶지만, 내가 지금 들어가면 키노시타는 이야기를 멈추기는커녕 왜 이제 왔냐며 날 붙잡고 이야기 할게 뻔하다.

 

“그게 아니라! 그 마음이 기특하지 않아? 같이 갔어도 될 텐데!”

“그렇군. 에노키는 다치지 않았나?”

“응? 아. 그건 걱정 마. 오히려 여유롭게 제압하고 뒤늦게 따라왔더라고”

“다행이군”

 

좋아. 이걸로 오늘 자랑은 끝. 이제 난 모른 척 하고 들어가서 과자나 풀어놓으면 그만이다. 막과자들뿐이지만, 키리시마는 먹는 건 잘 안 가리고 키노시타도 입이 까다로운 편이 아니니 괜찮을 거야. 두 사람 다 기뻐해 주면 좋을 텐데.

기대감을 품고 문고리를 잡은 날 배신한 것은, 예상치도 못한 키리시마의 맞장구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에노키는 강하니까 그 정도에 다칠 리가 없나”

“그렇지? 염마청에서도 신뢰받았다고 하니까~”

“기술도 순발력도 좋지. 다른 녀석들에 비해 힘은 부족하지만, 충분히 재치를 부려 반격하고”

 

우와, 키리시마가 날 칭찬하고 있어. 나는 키노시타가 칭찬 해 줄때보다 더 부끄러워져 손잡이를 놓았다. 키노시타의 칭찬은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무뚝뚝한 키리시마가 칭찬해 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해서인가? 왜 더 부끄럽지? 얼굴이 뜨거워서 고개를 들 수도 없다. 나는 과자들 속에 얼굴을 살짝 파묻고 귀에 들리는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타니자키도 그러더군, 나 이외엔 에노키와 대련할 때가 의외의 상황이 많아 즐겁다고”

“그랬어? 타니자키가?”

“그래. 어쨌든, 에노키는 성격이 그래서 그렇지 강하고 좋은 녀석이야”

“맞아, 맞아. 강하고 상냥하고 귀엽고…”

 

야단났네. 이제 조금은 잠잠해진 키노시타까지 자극을 받은 건지 칭찬의 장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날 자랑스러워 해 주는 건 고맙지만, 이러다가 내 얼굴이 터지면 어떡하지.

 

“가끔은 불안하긴 하지만, 이상하게 미워할 수는 없지. 히라하라처럼 대형 사고는 안치고”

“그렇게 사소한 곳에서 실수하는 게 귀엽지 않아? 그것도 도와주려다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덜렁이 여자애는 귀여운 법이니까”

“딱히 덤벙거리지 않아도 표정이나 몸짓이 귀여운 편이라 보는데”

 

…아니 점점 칭찬의 주제가 어긋나는 기분이 드는데. 실력이나 일 처리에 대한 칭찬이면 몰라도, 갑자기 왜 귀엽다는 이야기로 가는 걸까. 다들 나보다 크니까 날 귀엽다고 하는 모양인데, 그런 논리라면 마츠모토가 제일 귀여운 게 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렇지? 에노키는 귀엽지…”

“어린애 같긴 하다만…”

“그 점이 귀여운 거니까, 응…”

 

아, 이건 못 참는다. 부끄러움 너머에서 강한 반발심이 솟은 나는 덥석 문고리를 잡았다. 날 귀엽다고 하거나 덤벙거린다고 하는 건 상관없지만, 어린애 같다고 하는 건 못 참는다. 이 세상에 이렇게 커다란 어린애가 어디 있다는 거야! 날 어린애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사이토 씨와 롯카쿠 씨 정도뿐이라고!

문고리를 돌리고 앞쪽으로 살짝 힘을 주면 소리도 내지 않고 문이 열린다. 나란히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에게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고 말하려던 순간,

 

“역시 내가 지켜줘야겠네”

 

두 사람이 동시에, 똑같은 소리를 말했다.

마치 짜 맞춘 듯 딱 들어맞은 타이밍. 나는 이게 날 놀리기 위한 말이 아닐까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는 두 사람. 그리고 놀란 표정이 곧 조금은 썰렁하게 변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저거, 절대 짜고 치는 건 아니다.

 

“무슨 소리지? 에노키와 제일 임무를 많이 나가는 건 나다. 에노키도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많고. 네가 지켜줘야 할 이유는 없을텐데”

“그건 내가 할 말인데… 키리시마는 같이 임무를 많이 나가도, 늘 일부터 우선시하잖아? 난 아냐. 에노키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건 근무태만이다. 난 일도 잘하고 에노키에게도 잘 할 수 있어”

 

잠깐 키리시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근무태만이라니, 키노시타만큼 성실한 동료가 몇이나 된다고? 오히려 근무태만은 타가미 쪽이 어울리지 않을까?

…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지금은 내가 낄 자리가 없는 것 같다.

 

“키리시마, 너무 자신 만만한 거 아냐? 그리고 에노키는 강하다고 한 건 키리시마잖아?”

“강한 것 하고 지켜주는 건 상관없다. 강해도 내가 지키고 싶으면 지켜”

 

저 두 사람. 방금 전까지 합 맞춰서 날 칭찬하던 사람들이 맞긴 한가? 순식간에 날 칭찬하는 시간에서 100분 토론의 시간으로 변한 휴게실 내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이런 분위기는 질색이다. 나는 두 사람이 날 발견하기 전에 잽싸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아아, 이대론 과자도 못 먹겠네. 다음에 먹으면 된다지만, 과연 언제 또 모일지. 포장도 뜯지 못한 과자들을 끌어안고 방으로 향하는 나는 여기까지 들려오는 휴게실의 대화를 애써 모른 척 했다.

옥도사변

​키리시마x에노키x키노시타

by. @Ruen_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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