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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테일

코브라(에릭)×은

“은은 왜 에릭이랑 사귀는 거야?”

“컥,”

“은?!”

 

   은의 손에서 컵이 떨어졌다. 미처 넘어가지 못하고 걸린 물이 턱으로 흘러내렸다. 연신 기침을 뱉어대던 그를 보고 소라노가 무미건조하게 손에 들린 잡지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거 안 물어보는 편이 좋을 거라구, 엔젤의 시선은 여전히 잡지에 고정된 채 중얼거리듯 툭 말을 뱉었다. 메르디의 시선이 소라노 쪽으로 향하다 은의 기침소리에 굴러가던 눈동자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괜찮아?”

“큭, 에릭의 일 말이냐.”

“괜한 걸, 물어본 걸까? 둘이 자주 싸우길래….”

“그거야 그 놈이…!”

 

   은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가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에 입을 다물었다. 그의 귀는 성가시다. 정확히는 듣는 마법이라는 것이. 뭐 한번 잘못 말했다가 귀에 들어가면 귀찮아질 터였다. 아니, 내가 그걸 왜 신경 써 줘야 하지? 애인한테 불평불만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걱정 뒤로는 괘씸함이 차올랐다. 그래, 뭐 어때. 어차피 에릭 그가 잘못한 일이 대부분이었다. 은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오늘 허심탄회하게 말 좀 해보자.

 

“이제 나도 그 자식을 왜 좋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첫 번째 운은 그랬다. 또 시작이네. 소라노는 아예 잡지로 얼굴을 덮었다. 오늘 일만해도 그렇지. 혼자 갈 수 있었다! 은이 주먹으로 제 뒤의 벽을 때렸다. 그깟 어둠의 길드 하나 쯤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자식은 너무 과잉보호라고. 애초에 옛날에는 내 뒤에서 보고만 있었던 주제에 잠깐 그사이 좀 크고 마법 좀 얻었다고 날 아주 약골 취급하고 앉았어. 지금 그놈이랑 싸워도 진심으로 밀리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상성이 안 좋은 건 사실이야. 사실이다만, 그렇다고 내가 그 놈보다 약하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야. 무한시계 때도 내가 이겼거든? 나한테 제대로 한 번 이겨본 적도 없는 주제에 나보고 뭐라는 줄 아나? 만날 일 갈 때마다 옆에 붙어서 혼자 가서 할 수 있긴 하냐? 라고 비아냥 거린다고, 그자식이!

 

“은이 항~상 죽으니까 그렇지.”

 

   소라노가 덧붙였다. 그래,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 몸이거든? 물론 그 놈이 가면 일찍 끝나기야 하지. 포효 한 번 정면으로 맞추면 게임 끝이니까.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잖냐. 난 그 망할 놈의 과잉보호가 싫다고! 보호라고 말하고 있잖아. 애인의 과잉보호 정도 그냥 받아들이든가 흘려 받아. 그녀는 따박따박 그의 말에 반박했다. 아무래도 뭔가 쌓인 모양이었다.

 

“정말 왜 사귀는 거야?”

 

   메르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은을 바라보았다. 소라노는 잔뜩 예민한 얼굴로 잡고 있던 잡지를 팍, 땅에 내팽겨 쳤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들이라구, 다. 그래, 정말 그 눈치 없고 재수 없고 열 받는 애랑 왜 사귀는 데?! 엔젤이 볼 멘 소리를 내뱉다 헉,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거야, 그, 그 놈이 좀 그렇긴 해도, 아니, 재수 없다거나 눈치 없다곤 안했다!”

 

   이윽고 소라노가 제 귀마개를 쓰곤 동굴 벽면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자신은 포기했다는 의사였다. 리얼충 다 죽어버리라지. 난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반면 리처드는 책을 품에 끌어안고 은의 이야기를 경청 중이었다. 사랑, 이네요! 소라노가 작게 중얼거렸다. 염장질이지.

 

“그래도 좀, 얼굴은 잘생기지 않았, 나?”

 

   물론 내가 얼굴만 보고 그 놈이랑 사귄다는 건 아니지만. 가끔 챙겨주는 게 귀엽기도 하고, 아주 약간이지만 잘생겨 보이기도 하고? 게다가 그 자식 거의 이십 여 년 간 나만, 봐왔다고, 아, 이거 꼭 말해야 되냐? 은이 어느새 새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싸우는 거 보면 좀 섹시하고, 옛날에 비해서 많이 듬직해졌거든? 키도 나 반 만하던 그 꼬맹이가 어느새 저만치 커서, 아무튼, 그렇다고. 은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래, 결국 좋아서 사귀는 구나. 메르디는 속으로 말을 중얼거리며 소라노의 반응을 머릿속으로 다시 되감곤 그녀를 흘끗 바라보았다. 이걸 계속 들었던 거구나. 그래서 그렇게 반응했던 거였다. 소라노는 금세 작은 숨을 색색 뱉으며 잠들어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어지간히 지루한 이야기가 아니면 저럴 수도 없지.

 

 

 

 

   *               *                *

 

 

 

 

“그래서, 언제 들어가려고?”

 

 

   제랄은 동굴 입구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에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 알아채나 기다리고 있었더니 끝까지 모르는군.”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놈이라서 말이다. 에릭은 눈을 감은 채 헛웃음을 뱉었다. 거봐라, 저 놈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잖냐.

by. @OING_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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