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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왕자님

미카제 아이x현미나

*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다고 연락하자마자 친구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무지막지한 손에 끌려서 도착한 가게 간판을 보았다.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로 Fairy. 일본으로 이민 가기 전에 자주 왔던 술집이었다. 양팔을 죄인 호송하듯 친구들에게 잡힌 채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친구가 나를 제일 안쪽으로 밀었다. 구석에 박힌 채 포위하듯 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미리 시켜놓은 술과 안주는 탁자 위에서 식어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친구들의 얼굴을 한 번 돌아보았다. 성아는 3년 사이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머리를 반 이상 잘라버려서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윤희는 결혼하고 벌써 아이가 둘이었으며, 지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교를 다시 들어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라는 말을 이해했다. 친구들은 그 사이 다들 조금씩 변해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모두 눈이 반짝이는 게 내게서 무언가를 원하는 모양이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뭣 때문에 여길 데려온 거야?”

  “우리한테 할 말 있지 않아?”

  “뭐가?”

  “너 세 달 전에 톡방에서 난데없이 말했잖아.”

  “그러니까 뭘?”

  “너 남자친구 생겼다며?”

 

 

   조금 긴장해서 힘이 들어갔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다시 한 번 친구들을 돌아보니 더욱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성아가 말했다.

  “그거 진짜야?”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을까봐?”

  “야, 이런 미친. 진짜래!”

  “이게 욕까지 할 일이냐.”

  “성아가 그럴 만도 하지.”

   윤희가 손으로 턱을 괴고 웃었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나타나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여전했다. 이 와중에도 다른 손으로 술잔을 집고 안주를 먹고 있었다. 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미나 인생에 남자친구가 생길 줄 누가 알았냐. 난 너 죽을 때까지 혼자 살 줄 알았다고?”

  “그럴 생각이었지.”

  “일본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지금 남자친구를 만났다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자 성아가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잔뜩 올라간 입꼬리 탓에 동그랗게 나온 광대뼈가 계란 같았다.

 

 

  “세상에, 현미나한테 남자친구라니!”

  “와, 천하의 현미나를 잡은 남자가 대체 누군지 궁금한데?”

  “안 말해줄 건데?”

 

   술잔을 들며 눈을 깜박이자 일순간 모두 입을 다물었다. 기껏 판을 벌여뒀더니 나온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성아가 이번에는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왜?!”

  “왜긴 왜야. 내 마음이지.”

  “야, 톡방에서 ‘나 오늘부터 남자친구랑 사귀게 됐어.’라고만 하더니 그대로 잠수 타버려놓고 이제 와서 아무 말 안 하겠다고?”

  “내 남자친구인데 뭐.”

  “그러지 말고 좀 말해봐. 얼마나 잘난 남자기에 이래?”

 

지혜 말에 귀가 솔깃했다. 사실 자랑하고 싶었다. 내 남자친구가 이런 사람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사진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아이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내 입에 바느질을 해놓았을 뿐이었다.

   내가 봐도 아이는 정말 잘난 남자였다. 일단 직업부터가 아이돌이었다. 그것도 지금 일본에서 탑 아이돌 위치에 있는 QUARTET NIGHT의 멤버였다. 그 위치에 있을 만큼 노래 실력도 뛰어났으며 못하는 장르가 없었다. 물론 이 부분은 아이가 송로봇인 것이 한 몫 하긴 했겠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사랑을 알게 된 후로 그동안 어려워했던 감정을 노래 안에 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탄스러웠다. 춤도 빠질 데가 없었으며, 작사는 이제 그에게 쉬운 작업이 되었다. 게다가 가요제 이후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그가 짓는 웃음은 내가 이제까지 보아온 어떤 인간들보다 더욱 사랑스러운 감정이 가득했다. 그만큼 그는 모든 면에서 발전해있었다. 급격하게 변하는 감정에 따라가지 못해 망가져가던 몸도 이젠 완전해졌으며, 아이돌로서의 실력도 한층 레벨이 높아졌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이제 그는 명실상부 일본 최고의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남자가 바로 내 연인이라는 말을 지금 당장이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간신히 참았다. 친구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나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콘치즈를 한 스푼 떴다. 성아가 앞에서 콧바람을 내쉬고 있었으며, 지혜의 볼은 이미 불퉁하게 나왔다. 윤희도 불만을 표현하듯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자연스럽게 돌려서 다시 술을 마셨다.

by. @AixBi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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