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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사토X호시 아즈사

   “이야-피곤하네!”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는 바로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그가 설계했을 제 1차 웨이브, 어째서 나는 거기에 포함되지 못했지? 여객기를 몰아 제약회사 건물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뿌연 먼지 속에서 반듯이 자리한 그 모자와 함께 사라지지 않는 미소로 총을 꺼내들어 등장하는 모습이란…IBM을 통해 바라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박력과 잔인함이 내 피 한 방울 한 방울 모두 소용돌이로 만들어버렸다. 즐거워. 마치 그가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건물 옥상에 무릎을 꿇고는 텅 빈 하늘을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국민들에게 묻겠다. 이 전투를 통해 판단하라. 우리와 인간, 어디에 붙을 것인지를.’ …몽롱한 황홀감에 젖어 있다가 온 몸에 찬물을 끼얹은 듯 갑자기 찾아온 감정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희열이었다. 아인이라는 종족들은 언제나 인간들에게 억압 당해왔는데 이렇게 역으로 그들을 위협 할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으며, 인터넷에 송출된 협박과 제의, 그 가운데에 있는 한 마디가 한평생 굳어있던 내 감정선에 큰 파장을 그려냈다.

  그는 인간을, 흙탕물보다 한없이 더럽혀져 있고, 얇디얇은 한 장의 유리보다도 약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지나가듯이 아무렇지 않게 살생을 저질렀다. 아니, 정의 구현이지.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몇 십 개의 총알에 몸이 뚫려 죽었다 일어나길 반복하던 그였기에 설마 여기가 그의 한계인가 하고 실망감을 품었었다. 하지만 영악하기 짝이 없는 그는 자신의 IBM과 또 다른 동료를 통해 확실한 부활을 해내 허벅지 옆의 총을 꺼내들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IBM으로 그를 관찰 했기에 망정이지 신체를 통해 그를 봤다면 단 한 번도 그가 총을 쏘는 것을 보지 못 했을 것이다. 한 번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장단점을 이용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몸에 총구를 들이밀어 뒤에 있는 적의 시야를 차단시켜 목숨을 앗아갔다. 이것뿐인가 전경 방패를 들고 있는 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몸을 낮게 숙여 방패 아래 빈틈을 노렸다. 다리 하나에, 심장 하나, 머리 하나.

똑바른 인간관계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내가, 존경심으로 무장하고는 당신을 따르기로 다짐한 그 날이었다.

* * *

“사토 씨는 친절해.”

 

“맞…아….”

 

“간혹가다 사토 씨가 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해. 어쩔 땐 신나보이는 얼굴로 게임을 알려주곤 해. 스쳐지나가면서 옷이 어울린다며 칭찬 해주시곤 해. 나에게 귀엽다며 짧은 스킨쉽을 하곤 해.”

 

“아…어….”

 

“그게 너무 좋아.”

 

 

  자신의 일이 끝났다는 듯이 검은색의 큰 형체인 IBM은 검은 가루를 하늘에 남기며 먼지처럼 사라졌다.

  사토 씨는 언제나 모두에게 친절했다. 성별과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사토 씨는 애정이라는 단어를 느껴보지 못한 나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피에 적셔온 그 따뜻한 손이 머리에 올라 갈 때면 애정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로 인해 나 또한 뜨거워지고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으니까.

 

  아인끼리 모여 지내는 아지트에서의 하루하루는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맞아, 사람은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는 것보다 공통으로 싫어하는 것이 있을수록 가까이 지낼 수 있다 했지. 제약회사 테러가 일어나고 바로 다음 날, 무작정 이들의 아지트에 들이닥쳐 마트에서 구입한 날카로운 과도로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의 배를 찔렀다. 그러곤 나에게로 날아오는 칼에 찔리지 않기 위해 IBM을 생성해내서 몸을 보호했다. ‘합격이야.’ 사건이 정리된 후 맨 처음으로 들은 날 향한 사토 씨의 목소리였다.

 

  자연스레 어른들 사이에 끼게 된 나는 여성이라는 점과 미성년자라는 점을 이용해 다음 웨이브에서 인질 연기를 하게 되었다. 인질 연기는 그 때 가서 알아서 하면 된다는 생각에 대해 사토 씨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셔서 훈련을…부탁드렸다.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간단한 스킨쉽은 해도 아직까지는 어색한 사이이기에 그런 관계인 사람의 시간을 뺏는건 부담스러웠다. 음, 솔직히 말하면 사토 씨 한정인 것 같아. 이런저런 생각에 파묻혀 있던 나를 깨운건 좋다는 답을 꺼낸 사토 씨였다.

  쾅-, 뇌가 흔들렸다. 시멘트 바닥에 부딪힌 두개골은 깨지지 않았을까 걱정 될 만큼 과격하게 부딪혔다. 두개골이 깨져도 1초만에 복구되겠지만 말이다. 역시나, 모래바람이 날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신체가 돌아왔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몇 초 동안 죽어있었다. 새우잠 자세로 손을 들어 눈 앞을 가리는 진득한 액체를 닦아낸 후에 하얀 셔츠가 빨갛게 변하는 것을 더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호시 양, 우리 아인은 ‘GAME OVER’ 가 뜨면 한순간에 사라지는 인간들과 달리 ‘RETRY’ 라는 선택지가 존재해. 그리고 매번 새로운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네….”

 

“그러니까 이번 일을 하는 중에 호시 양이 죽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직은 어리니까 말이지. 상냥하기 그지없는 낮은 목소리가 내 가슴을 간질였다.

 

  사토 씨는 가끔, 새로운 감정을 나에게 선사하곤 해. 그것에 보상하는 건 사토 씨가 계획한 웨이브를 대성공이 되기위해 뒤에서 돕는 것. 새까만 눈알을 굴려 햇님달님의 동아줄처럼 내려온 사토 씨의 손을 확인했다. 그래, 사토 씨 당신은 나의, 나의…나의 뭐지? 잠시만, 나의 구세주가 아닌가?

 

 

“아직도 어지러운건가?”

 

“아뇨…괜찮….”

 

“이런, 조심해야지.”

 

“가, 감사합니다!”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못 빠져나오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맞잡았고, 그 따뜻한 체온에 정신을 차렸다. 머리를 징으로 하고, 세게 후려친 듯 눈앞이 아찔해지는 상황에 비틀거리자 사토 씨가 보다 가까이 다가와서 어깨를 그러쥐었다.

 

  이런, 사토 씨가 내 심장이 뛰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족속들을 칼과 총으로 이리저리 들쑤셔 분수처럼 날아드는 그 피로 인해 동맥이 뛸 수 있었으며 이 일의 주동자는 바로 사토 씨였고, 닿아오는 따뜻한 체온에서 없을지도 모르는 희끄무레한 애정을 느끼는 것도 사토 씨였다. 나는, 당신이 있어야 존경과 쾌감과 흥분과 카타르시스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by. @choi2007819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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