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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아오네 타카노부 × 타나바타 휴우미 × 코가네가와 칸지

  “안 된다니까!”

  “된다!”

     후배의 SOS 문자를 받고 무슨 일인가 설렁설렁 내려오던 3학년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이번엔 무슨 일인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누오카.”

  “앗, 도와주세요!”

  “이거 놔주라아-. 응?”

     상황은 모르겠지만 우선 붙잡혀있는 타나바타를 놓아줘서는 안 된다고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이미 몇 번의 전적이 있었기에 둘은 경고음에 따랐고 하나는 기분 나쁘게 히죽 웃으며 그 앞을 막아섰다.

 

  “이익! …난 갈 거다!”

     막기를 잘했지. 어딜 간다는 건지는 몰라도 분명 아직 1교시 밖에 지나지 않은 학교를 다 때려치우겠다는 소리니. 카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익숙하게 타나바타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직 학교 안 마쳤잖아. 수업 빼먹다보면 성적 떨어질 거야.”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아니, 중요하지.”

     

     부활동 금지 당하고 싶진 않잖아. 우리 따라다니기도 할 거면서. 그렇지? 조곤조곤하게 다독이니 금방 기세가 죽어 축 쳐져버린다. 꽤나 양심이 아픈 일이지만 제 여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아이가 학교도 빠지고 어딘가로 튀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길도 잘 잃으면서 어딜 자꾸 혼자 가려는 건지. 입 꼬리만 당겨 웃으며 어깨를 지그시 눌러 안 된다는 의사를 굳건히 전했다.

  “후냐, 곰님 보고 싶은데….”

  “동물원이라면 다음에 같이 가줄테니까.”

  “아냐! 곰님! 아오네 씨!”

    3학년 세 명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              *            *

 

 

 

     요약하자면 저번에 미야기에 다녀오면서 만난 사람과 친해졌는데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학교도 때려치우고 미야기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 대담한 행동력을 칭찬해줘야 하는 걸까, 무모함을 나무라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움을 삼키며 카이는 그저 입 꼬리를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뭐하는 사람인데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그래.”

  “난 꼬리 없다?”

    관용구를 못 알아듣고 고개를 우로 기울인 타나바타는 부연설명을 듣더니 이윽고 팔짝팔짝 뛰면서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어~~~~ㅁ청 멋있는 사람이다! 쑥, 싹 해서 콰광! 한다!!”

  “운동하는 사람이야?”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나열에 카이는 웃으며 의미를 집어낸다. 그 기이에 가까운 모습에 감탄하는 남자 배구부 부원의 귀에 한 단어가 꽂혔다.

  “응! 배구한다. 굉장해!!”

  “포지션은? 스파이커야?”

  “곰님은 어, 음, 타탁! 하고 슉! 해서 떨어뜨리는데….”

  “미들 블로커야?”

  “바로 그거다! 그거라고 했다. 곰님 굉장하지.”

     의기양양하게 허리에 손까지 얹고 씨익, 웃는 모습에 이누오카는 자신도 미들 블로커라고 항변했지만 이누오카랑은 달라, 라고 딱 잘라 말해진 덕분에 조금 충격을 받고 말았다.

  “블로킹이라면 나도 멋있을 텐데?”

  “에이, 쿠로는 전혀 아니지.”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쿠로오는 이제 전력으로 타나바타는 놀려먹으려 들 것이다. 앞이 뻔한 일에 카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 역시 곰님 보러 갈래!”

 

 

 

 

 

*           *           *

 

 

 

 

 

  “역시 곰은 멋있는 쪽은 아니지.”

  “곰님이 얼마나 멋있는데…!”

     몇 번이나 발을 쿵쿵 굴리며 떼를 쓰던 타나바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양이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뒷말이 생략된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 카이는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야쿠가 쿠로오의 옆구리를 찔렀다.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훙냐….”

     이상한 의성어를 소리 냈을 뿐이지만 마치 어느 만화에서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라고 말하는 여자 주인공의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에 카이는 악역이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뒷목이 당겨오는 것도 기분 탓이면 좋으련만. 착잡한 마음을 숨기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럼 내가 알려준다!! 냐하핫! 고맙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카이는 150cm도 못 되는 작은 체구로 방방 뛰는 여자아이에게 쩔쩔매는 자신을 보고 기분 나쁘게 실실 거리는 쿠로오에게 슬쩍 시선을 던져주고는 고개를 삐꺽거렸다.

  “곰님은 엄청 크다!”

  “곰이라며.”

     씰룩, 까치발까지 하면서 팔을 쭉 펼치고 열심히 설명해주려는 타나바타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박혔다. 얄미운 검은 고양이. 들어 올린 손을 고양이처럼 하고 펄쩍 뛰면서 물어뜯으려다 그저 입을 삐죽이고는 못 들은 척, 다시 말을 이었다.

  “키도 이~~만큼 크고, 덩치도 상당해서 멋있다! 빠르기도 빨라!”

  “그야 곰이니까 그렇겠지.”

  “캬악, 듣지 마라! 쿠로는 알 필요 없다! 저리가!”

     결국 또 터졌다. 타나바타는 처음 씰룩거렸을 때 생각한 대로 고양이 같이 손을 세우고는 쿠로오에게 달려들었다. 왜 저렇게 못 괴롭혀서 안달일까. 귀여워서 그런 거겠지. 나중에 애 낳으면 미움 받을 아버지 상이야.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에 담소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던 카이는 이누오카에게 손짓을 하고 둘을 — 타나바타의 일방적인 사투였기에 정확히는 한 명이었지만 — 뜯어말렸다.

  “진정하고 계속 얘기해줄래?”

     역시 들어줘야할 운명인 듯싶다. 이 상태라면 종이 울려도 다음 시간에 쪼르르 나타나서 재잘재잘 얘기를 늘어놓겠지. 이 참에 친해졌다는 ‘곰님’에 대해서 알아둬도 나쁘지 않을 테다. 보아하니 좋아하는 것 같고 그 쪽도 비슷한 것 같으니.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숨기며 타나바타를 향해 다정히 미소 지었다.

  “흠! 흠! 곰님은 말이 없지만 행동으로 알려준다! 멋있고 귀여워!”

     만족한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인 타나바타는 재잘재잘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상냥하다! 세심하고 다정해. 음음, 좋다!”

     뭘 떠올린 건지 헤벌쭉 웃으면서 두 손을 들어 올려 상체를 이리저리 비트는 모습이 꽤 귀엽다. 그게 누군지도 모를 남자로 인한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면 문제였지만.

  “코가네랑 여기저기 놀러가려고 할 때는 우리 보면서 흠! 이러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후냐냐 무슨 뜻일까?”

  “글쎄. 코가네라는 사람은 또 누구야?”

  “곰님 네 대형 세터! 헤헤, 좋은 친구다! 동갑이고 매달리면 팔을 꼭 잡아준다.”

  “거기서도 막 매달리고 그러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타나바타를 보고 3학년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이렇게 경계심이 없는 건지. 쿠로오는 아까 놀리고 하던 건 어디에 갖다 버렸는지 엄한 아버지 모드에 들어가 이것저것 추궁하기 시작했다.

  “코가네가 눈썹을 이렇게 세우고 ‘제 일행임돠!’ 해줬어!! 코가네는 제일 좋은 친구다! 믿음직스럽고!”

  “엑! 나는?!”

  “우움, 이누오카도 좋은 친구지만 이누오카도 가끔은 못 됐잖아.”

  “너무해. 나는 휴우미가 제일 좋은 친구인데!”

  “도쿄에서는 이누오카가 제일 좋은 친구다! 코가네한테는 조금 못 미치지만!”

     그게 뭐가 의기양양할 일인지 다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엣헴, 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누오카가 축 쳐지자 쪼르르 다가가 괜찮다는 의미인지 토닥토닥 달래주기까지 했다. 꽤 훈훈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어째서 승리자와 패배자처럼 보이는 걸까. 쿠로오는 포기하지 않고 엄한 장인어른(?)의 자세를 고수하며 집요하게 계속 추궁했다.

  “그 코가네라는 녀석하고는 그냥 친구인 거지.”

  “친구 말고 달리 또 뭐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그 곰님은?”

  “곰님은 곰님이다! 좋은 사람이야!!”

     그 대답에 엄한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경계를 풀지 않았다. 혼자 좋아서 방방 뛰는 타나바타를 보며 3학년은 자기들끼리 고개를 끄덕이며 모종의 다짐을 했다. 그 모습이 퍽 근엄해 보여 타나바타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지만 종소리가 먼저였다.

  “아앗, 나중에 계속 말해줄게!”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언제 토라졌냐는 듯 자연스럽게 뛰어올라 어깨에 매달린 타나바타를 달고 이누오카가 먼저 교실로 들어가고 3학년은 서둘러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 딸(?)을 쉽게 넘겨주지는 않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면서.

by. @S__pa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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