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나라에는 떠돌아다니는 광대 중 소위 칠선(七仙)이라고 불리는 일곱이 있었다. 칠선은 니카이도 야마토를 수장으로 가무와 연극에 능한 이들이 모인 남사당패였다. 거기에 이름에 어울릴만큼 준수한 외모 탓에 그들은 단연코 으뜸가는 남사당패로 거듭났다. 칠선 안에서 제일가는 소식통인 이오리가 말했다.
“니카이도 씨, 전하께서 저희를 부르셨다는 걸 들으셨습니까?”
“아, 응. 그게 왜?”
“왜냐니요. 그러면 새로운 걸 연습해야 하잖습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지금도 나름 괜찮을 것 같은데.”
“우리가 노는 판이 커지는데 그건 예의이자 성의겠죠.”
이오리가 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높은 분들 앞에서 논 적이 있다 하더라도 사무라이들 속에서 있다 보니 위압감에 리쿠가 제법 힘들어했었다. 그래서 야마토는 큰 판에 끼어드는 걸 피하곤 했는데 이오리는 리쿠가 가진 능력을 굉장히 맹신하고 있어 그가 빛날 수 있는 위치라면 전부 선점하고 싶어 했다. 그러지 말라 한들 영리한 수재가 지닌 고집을 꺾을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 야마토는 한숨을 쉬었다.
“대신 리쿠를 너무 무리시키지 않는 선으로.”
“알겠습니다.”
이오리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야마토가 진지한 어투로 말해서인지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리쿠는 저를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야마토는 제가 복잡한 게 귀찮아서 그런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말라며 리쿠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결국 야마토 말대로 그들은 리쿠를 위해 가벼운 가무극을 준비했다. 가볍다고는 했지만 동작이 크지 않을 뿐이지 짜임새는 근래 그들이 선보였던 가무극 중에서 탄탄한 편이었다. 칠선은 각자 맡은 역할을 능숙하게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국왕이 칠선을 초대한 자리는 5년 남짓 나라를 떠났던 오랜 벗, 역관이 가족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옴을 축하하는 잔치였다. 긴 시간 동안 고초를 겪었을 그들을 위로하는 게 목적이었다. 물론 칠선은 정확한 의도는 알지 못하고 그저 왕이 초대한 자리이니만큼 최선을 다 하자는 게 목표였지만.
칠선은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계속 감탄했다. 엄청난 크기 하며 그 곳에서 나오는 궁인들 수는 모두를 압도할 정도로 많았다. 잔뜩 긴장한 리쿠가 야마토에게 물었다.
“저희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는 데서 정말로 가무극을 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우리가 하는 거에 집중하면 주위는 금방 조용해지고, 당신도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이오리가 위로하자 리쿠는 조금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야마토는 그런 그를 보고 있다 소고에게 다가갔다.
“어이, 소우.”
“네, 야마토 씨.”
“오늘 맡은 역할은 최선을 다해서 잘 살려줘. 형님이 부탁할게? 타마도 마찬가지고.”
“맡겨주세요.”
“에, 야마 씨. 어려운 거 시켜 놓구.”
극 줄거리는 대략 이랬다. 시련을 겪은 리쿠는 홀로 남게 되었는데 리쿠가 지닌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서로 대립하면서 리쿠에게 변화를 가져다주는 내용이었다. 다소 뜻밖이지만 타마키가 선한 마음, 소고가 악한 마음을 연기하게 되었고, 둘은 선악을 상징하는 가면을 쓰기로 했다. 연기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야마토는 진지한 면이 있어 자주 늘어지는 그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연기만큼은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한 가무극을 궁 안에서 보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는 이들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보이는 광경에 정신을 판 일행들을 미츠키가 끌어가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허둥대던 리쿠가 귀한 집 자제 옷자락을 밟고 말았다. 놀란 야마토가 급히 허리를 몇 번이고 숙여 가며 사죄했다.
“송구합니다, 아씨! 저희 동료가 일부러 밟은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네 놈. 어디서 우리 아씨 옷자락을 밟아!”
“쯧쯧, 내 이럴 듯싶으니 밑단을 다듬자 하였거늘.”
“그래도 전하께서 귀한 비단을 주셨는데 아껴서 무엇 하겠습니까?”
“아무튼 자네들은 신경 쓸 것 없네. 내가 아랫것들을 설득하지 못한 탓이니까. 가자, 아버님이 기다리시겠다. 아, 그렇지.”
“예?”
“전하께서 주신 것인데 이것을 밟은 만큼, 너희들이 본디 하던 것보다 오늘은 몇 백 배는 더 잘 해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네, 네!”
자제는 그렇게 말하고 제 시종과 함께 사라졌다. 이미 간 곳을 알 수 없게 되었음에도 야마토는 그가 떠난 곳에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가을 단풍 같은 머리색을 한 그는 누가 뭐래도 염태 고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왕에게 받은 비단이라 했음에도 밟았다는 이유로 질책하지 않는 대범한 면도 뇌리에 깊이 박혔다. 높으신 자제님을 본 게 한두 번도 아니건만 야마토는 오래도록 그가 간 자리만 보고 있었다.
하나비는 시종이 건네준 침으로 밑단을 조심스레 고정시켰다. 화려한 의상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궁중 비단으로 옷을 지어 놓으니 막상 입어도 될지 막막하기만 했다. 허나 제 아비가 왕에게 하나뿐인 지기(知己)인 만큼 격식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껏 단장한 뒤 옷 밑단이 광대에게 밟혔으나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한 광대 탓이었다. 제가 밟은 것도 아니건만 어찌나 안절부절 못하던지. 날렵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동료를 감싸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비 옆에 앉은 그는 금방 연회에 빠져들었다. 중반부가 되었을까. 아까 소동을 벌인 이들이 연회장 중앙에 섰다. 칠선이라 불리는 그들은 새로운 가무극을 준비했다며 그것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그들이 선보이는 가무가 유려한 탓이었는지, 아니면 짓는 표정이 애처로워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비는 극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 안에서 돋보인 건 아까 제게 몇 번이고 사과했던 이였다. 붉은 머리 소년을 가르친 스승 역인지 번뇌하는 제자를 어떻게든 잡아주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하나비는 흐르는 눈물을 부채로 감추며 극에 열중했다. 끝날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던 그는 막바지에 이르자 스승 역을 맡은 이를 직접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제 옆에 있던 시종에게 역관 나리 아씨께서 보잔다고 제 말을 전하도록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