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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 아커만x린

 

 

* 현대 AU입니다.

 

 

 

리바이 아커만(3n, 남성, 회사원, 홍차를 좋아함)은 현재 골치가 아픈 상태였다. 아침부터 다섯 개나 맞춘 알람이 하나도 울리지 않았고, 빵에 잼을 바르다 미끄러져 떨어뜨렸다. 그 빵은 또 하필 잼 바른 면이 바닥에 향하게 떨어졌으며, 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잼을 치우다가 싱크대 밑의 바퀴벌레 시체를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 지하철은 만원이었고 그는 세 번이나 지하철을 놓쳐야 했다. 간신히 회사에 도착했을 때 그의 옆자리 신입사원 에렌이 그의 바지에 커피를 쏟았다. 퇴근길은 더 지독했다. 길에 떨어져 있는 바나나 껍질을 밟아 미끄러졌고, 그 상태로 옆 운동장에서 초등생이 발로 찬 축구공이 머리로 날아왔다. 한 마디로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리바이는 일단 찝찝하게 커피가 눌러 마른 바지를 당장 갈아입고 싶었다. 오늘은 그것만 해도 충분히 고된 날이었다. 욕 한 번 읊조리지 않고(속으로 중얼거리긴 했지만) 하루를 견딘 스스로를 마음껏 칭찬 해 줘도 모자랐다. 그런데...

 

 

 

"리바이 아커만 씨!! 저기요!!"

 

 

 

어쩌다 이런 귀찮은 녀석이 붙어 버렸는지...

 

 

 

 

 

노란 빛이 도는 긴 갈색머리의 여자는 꽤 평범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번화가에서 한 번쯤 곁을 스치고 지나갔을 법한 생김새였으므로, 처음엔 언제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갈색 머리와 검은 눈동자. 지나치게 흔한 특징이었다. 하나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동그란 인상일까. 여자는 모든 게... 동그랬다. 눈도, 코 끝도, 웃음이나 말투, 목소리 전부. 동글동글. 여자의 온 몸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곰곰히 기억을 헤집어보는 리바이에게 여자가 방긋 웃으며 소리쳤다. 반가워 죽겠다는 목소리였다.

 

 

 

"한참 찾아 다녔어요!!"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활짝 웃는 낯이 조금... 귀여웠다. 리바이가 걸음을 멈추고 여자를 마주봤다. 본인에게 용건이 있어 보였고, 그는 지친 상태였지만 여자에게 오 분 정도 시간을 내 줄 정도의 체력은 있었다. 여자가 허리를 숙여 동그란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다가, 고개를 확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어디서 봤더라?

 

 

 

"저 모르시죠?! 저 그쪽 수호천사인데요!!"

 

 

 

리바이는... 그냥 무시하고 집에 갔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저기요!! 리바이 씨!!"

"......"

"키는 백 육십!! 몸무게 육십 오!! 독신이고 집에 수저는 두 세트!! 또 뭘 더 말해야 해요?!"

"주거침입은 3년 이하의 징역..."

"내가 그쪽 집을 언제 들어 갔다구요!! 아, 좀 멈춰봐요! 안 그럼 바지 벗긴다?!!"

"협박죄 추가..."

 

 

 

재잘재잘재잘재잘... 여자의 목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그 입을 틀어막던가 제 귀를 닫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자의 말은 대충 이랬다:

 

 

 

일단 저는... 린이에요. 제 이름이요. 성이요? 천사한테 성이 어디있어. 굳이 따지면... 아커만? 리바이 씨가 제 담당 피수호인이니까요. 린 아커만! 신혼 부부같네요. ... 농담이에요. 주먹 푸세요. 음... 어제부로 좌천 당했어요. 근무태만으로... 요즘 운이 좀 없으셨죠? 제가 일을 좀... 게을리 해서. 죄송. ......주먹 푸시죠?

 

 

 

하여튼... 그래서 여기로 떨어졌는데... 이제 수호일은 못하고요. 대충 지상계 조사 같은 걸 해야 하는데... 일단 저 지금 인간 몸 빌려서 왔구... 지낼 곳이 없어서용. 아는 사람은 리바이 씨만 있어서 여기루 왔죠. 초인종 아무리 눌러도 안 나오길래 이사간 줄 알았잖아.

 

 

 

네? 네? 본인이 왜 저를 책임져야 하냐구요? 웃기는 소리를 하네, 이 아저씨... 원래대로라면 당신 다섯 살 때 개한테 물려서 죽었어야 하거든요? 당신 지금 살아있는 거 다 나 덕분이거든요?? 어린 애도 아니고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신세 좀 집시다.

 

 

 

 

 

 

 

현관에 도착한 리바이는 바득바득 따라온 여자를 삐딱하게 쳐다봤다. 그래서,

 

 

 

 

 

"네 말대로라면 내 불운이 전부 네 탓이라는 건데."

"아~ 잼 바른 빵은 방향 돌려주려구 했어요. 근데 거기 바퀴벌레 시체가 있어서... 저 벌레 못 보거든요.“

"하아..."

 

 

 

이런 말 장난할 시간 없어. 그가 딱딱하게 일갈했다. 하루종일 혹사당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바지에서 커피 냄새가 역하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린의 눈썹이 동정을 구하는 강아지처럼 축 늘어졌다. 동그란 눈이 울상으로 구겨진다. 고작 몇 초 사이에 표정을 싹 바꾸는 게, 연기라면 극찬할 만 했다. 꾹 눌러 다무는 입술이 처연하다.

 

 

 

"나, 나아... 갈 데 없는데..."

"그래서."

"갈 곳 없는 어린 여자애를 이렇게 내팽개칠 셈이에요? 진짜아...?"

 

 

 

약점을 건든 듯 리바이의 동공이 약하게 흔들렸다. 이거다! 몰래 눈을 반짝인 린이 고개를 숙이고 동그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나... 여기 오다가 이상한 사람도 많이 봤는데... 이대로 혼자 있으면 무슨 일 당할 지도 모르는데에... 린은 좀 교활한 구석이 있었다. 계산적이고 영악한 면이 없었다면 그 나이에 천상계 말단 사원 자리를 꿰차지도 못했을 것이다. 줄줄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린의 호소를 들은 리바이의 동공이 끝없는 내적 갈등으로 흔들렸다. 아니, 신원 미상의 여성을 남자 혼자 사는 곳에 들여 놓는 건 역시... ... .

 

 

 

"...나 추워요."

"경찰서에 데려다 주지."

"지금 거기서 도망친 건데."

"하아... 또 무슨 일인데, 이건."

"배고파서 빵 먹었는데... 화폐 단위가 다른 걸 잊었어요."

 

 

 

린이 주머니에서 맨들맨들한 도토리 다섯 개를 꺼냈다. 물론 일반 도토리는 아니었다. 천상에선 꽤 높은 단위의 화폐로 취급받는 물건이었다. 지상의 인간들이 보기엔 도토리로 보였겠지만... 도토리를 들고 있는 린은 꼭... 다람쥐 같았다. 소동물... 그래, 햄스터 같은... .

 

 

 

 

 

"아무도 안 받아주더라. 나 돈도 없어."

"......"

"지인짜... 내쫓을 거예요?"

 

 

 

린이 리바이의 소매를 꼬옥 쥐고 물었다. 천적을 만난 다람쥐 같군. 터무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바이는 문득 린이 춥다고 투덜거린 것을 떠올렸다. 그제서야 찬 바람이 느껴졌다. 리바이야 두꺼운 아우터까지 걸치고 있었으니 문제될 게 없지만, 눈 앞의 다람쥐... 가 아니라 린은 얇은 쉬폰 원피스 차림이었다. 옷부터 신발까지 온통 흰색인 게 흰 물감 통에 풍덩 담갔다가 뺀 느낌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아싸!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린이 방방 발을 굴렀다. 신기하다. 인간 집은 처음 들어가 봐요. 기대하지 마. 아무것도 없으니까.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는 도어락에 손가락을 올렸다. 삑, 삑, 삑, 삑... ... .

 

 

 

 

 

"우와!!"

 

 

 

...... 진짜 아무 것도 없네... 린이 열린 문 사이로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칫... 미간을 잔뜩 구긴 리바이가 린의 머리를 잡아 밀곤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총총, 린이 따라 들어온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아무 것도 없었다. 휑 하게 빈 거실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사람 사는 집 같지가 않아. 린이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앉지. 앉아서 얘기하도록 해. 어디 앉아요? 저 의자? 아니. 의자는 하나다. 네 자리는 바닥이야. .......

 

 

 

"너무하네."

"그럼 나가."

"바닥 따뜻하당. 내 자리네, 완전."

 

 

 

리바이가 한숨을 내 쉬며 의자에 걸터 앉았다. 그래서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날카로운 시선이 린에게 향했다.

 

 

 

아직도 못 믿는 거예요? 봐, 나 여기 뿔도 있고... 그러고 보니 긴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혹 같은 뿔이 두 개 보인다. 불 끄면 머리 위에 링도 보여요. 야광이야. 수납형이라 꺼냈다 넣었다 할 수도 있어요. 볼래요? 아니. 그냥 넣어둬라.

 

 

 

지금은 뜯어졌지만, 날개 자국도 있어요. 여기, 날개뼈 쯤에...

그만. 그건 보여주지 마.

왜요?

... ... .

 

 

 

이 여자는 경각심이 없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대뜸 들어오질 않나, 날개 뜯어진 자국을 보여주겠다고 옷을 들추질 않나...

 

 

 

"지금은 인간 몸에 갇혀서... 힘이 약해지긴 했는데,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리바이가 팔을 올려놓고 있던 책상이 두둥실 떠올랐다. 한... 5cm 정도. 당장 내려. 넵. 와장창!!

 

 

 

"... ... ."

"... ... ."

"죄송."

 

 

 

책상이 쾅 떨어지며 유리 덮개가 화려하게 깨졌다. 황급히 리바이 쪽으로 보호막을 친 덕에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재산 피해는 조금 있었다. 바닥에 널린 유리조각들을 덤덤히 쳐다보던 리바이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 린을 쳐다봤다. 리바이를 향해 손을 뻗은 그 자세 그대로 굳은 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 제가 치울게요. 덥썩 유리 조각을 잡은 린이 으악!! 호들갑을 떨며 뒤로 나자빠졌다. 내가 치울테니 가만히 둬. 그보다... 다쳤나? 조심조심 유리 조각들을 피해 걸어온 리바이가 린의 손을 붙잡았다. 엄지 손가락에서 피가 몽글몽글 맺혀 나온다.

 

 

 

"으악... 으아악..."

"엄살은..."

"천사는 피 안난단 말이에요..."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앓는 소리를 내는 린을 보며 쯧, 혀를 찼다. 가만히 있어. 더 어지르지나 마라. 네에... 잘못한 강아지처럼 시무룩해진 린이 엉덩이를 밀어 방의 구석으로 샤샤샥 옮겨갔다.

 

 

 

"일어나서 움직여. 먼지 다 쓸고 다니지 말고."

"귀찮아."

"집주인 명령이다."

"깐깐하긴..."

 

 

 

큰 조각들을 주워 쓰레기 봉지에 담은 리바이가 빗자루를 가져와 작은 조각들을 쓸었다. 청소기 안 써요? 내 맘이야. 청소기 없어, 설마? 있어. 천사가 청소기 같은 것도 아냐? 21세기잖아요.

 

 

 

"요즘 천사는 핸드폰도 있어요. 짠~ 아, 맞다. 리바이 씨 번호 좀 주세요. 나 여기 지리 잘 몰라서 미아된다."

 

 

 

종알종알 제 휴대폰을 꺼내 흔들어 보인 린이 불쑥 리바이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눈썹을 한 번 까딱하고 숫자 열 한자리를 입력한다. 어쨌든, 이제 정말 동거인이니까...

 

 

 

동거? 리바이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모르는 여자와 동거라니... 누가 들으면 크게 오해할 만한 내용이었다. 이 생각을 린이 들었다면 천사는 무성인 존재니까 상관없다며 반박했겠지만, 린은 그 정도 힘을 쓸 수 없어 얌전히 다리를 모아 안고 멀뚱멀뚱 리바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와... 저장명 뭐예요? 집주인? 진짜 딱딱하다."

"넌 노예로 저장했으니 걱정 마."

"그것 참 감사하네요."

 

 

 

어쨌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리바이는 눈 앞의 제 수호천사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치다가, 결국 수용했다. 곁에 두면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군. 리바이의 생각을 읽은 것 마냥, 린이 동그란 눈을 휘어 웃었다.

 

 

 

 

-

 

 

"마트?"

"집 앞에 바로 있으니 헤맬 일도 없다. 리스트는 적어 두었으니 30분 내로 사오도록 해."

"알겠어용."

 

 

 

... 그리고 린은 두 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리바이 씨!!"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지... 손엔 왜 아무것도 없는 거고."

"나... 길 잃어서... 진짜 다시 못 오는 줄 알았어요..."

"너는 정말... 쓸모가 없군."

"천사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

 

 

 

아우터를 다시 걸친 리바이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가자. 넵! 린이 쪼르르 뒤로 붙었다. 때 탄 흰 쉬폰 원피스가 눈에 보였다. 하루종일 그걸 입을 셈인가? 그럼 벗고 다닐까요? 하아...

 

 

 

"잠깐 기다려. 여분 옷을 챙겨올 테니."

 

 

 

곧 방에서 나온 리바이가 커다란 박스티와 추리닝을 린의 품에 툭 던졌다. 갈아입구 올게용. 린이 쫄래쫄래 방으로 사라졌다.

 

 

 

"이거 리바이 씨 옷 맞아요?? 딱 맞는데??"

"... ... ."

"푸하학! 완전 내 맞춤 옷인데??? 와... 나 옷 핏 좀 봐."

"한 마디만 더 하면 그 딱 맞는 옷 입은 채로 내쫓아주지."

 

 

 

급하게 입을 앙 다물었다. 리바이가 지친 눈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벌써부터 힘들군...

 

 

 

마트에 도착하고 나서는 순탄했다. 린이 자꾸 과자를 몰래몰래 카트 안으로 던져 넣는다는 것 빼고는. 피곤한 얼굴의 리바이가 빠르게 과자를 제자리로 돌려 놓았으므로 플러스 마이너스 0이었다. 눈치를 보던 린이 슬쩍 남성용 바지를 카트에 집어 넣었다. 이건 뭐지? 리바이 씨 바지요. 그걸 왜 사. 이미 차고 넘치는데. 그럼 좀 갈아 입으시던가.

 

 

 

린의 시선이 바지 위의 커피 자국에 꽂혔다. 이 꼴로 돌아다니고 있었군... 말 없이 바지를 집어 든 리바이가 탈의실로 향했다.

 

 

 

 

 

"이것 봐요, 리바이 씨!! 공짜로 밥 주나 봐요. 빵 훔치지 말고 여기서 먹을 걸 그랬어요."

"제발 조용히 해... ... ."

 

 

 

시식 코너에 다다른 린이 발을 동동 구르며 리바이에게 소리쳤다. 잔뜩 신난 린이 소세지를 이쑤시개로 찍어 리바이의 입 앞에 들이댔다.

 

 

 

"아~"

"너나 먹어."

"...아!!!"

"칫... 귀찮게."

 

 

 

린이 버럭 화를 내자 미간을 찌푸린 리바이가 불퉁하게 입을 벌렸다. 잘 했어요~ 활짝 웃으며 소세지를 입 안에 쏙 넣어주자 모래라도 씹는 것처럼 잔뜩 인상을 구긴다. 소세지를 굽던 직원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신혼 부부이신가 봐요~"

"넷??"

"아닙니다."

 

 

 

얼굴을 굳히고 빠르게 대답한 리바이가 카트를 끌고 척척척 걸어갔다. 리바이 씨!! 저희 부부처럼 보이나 봐요!! 린이 옆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건 덤으로 무시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사야할 건 전부 구매했군."

"장 보는 거 재밌다. 다음에 또 해요."

"이게 무슨 오락도 아니고..."

 

 

 

띡, 띡, 띡, 삐리릭. 린이 문을 열고 통통 뛰어 들어오자 그 뒤로 양 손 가득 봉지를 든 리바이가 따라 들어온다.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쳐다 본다. 열 시 이십 분.

 

 

 

"바로 저녁 준비를 하지."

"메뉴는?"

"버섯 전골."

 

 

 

하나. 버섯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준비한다.

 

 

둘. 양파는 채썰고, 당근은 얇고 길쭉하게, 대파는 반으로 갈라 당근 길이와 비슷하게 자르고...

 

 

셋. 국간장 오분의 일 컵, 다진 마늘 한 컵, 설탕 한 컵, ...

 

 

 

"잠깐! 너무 빨라요."

"네놈이 느린 거다. 천사라며? 힘이라도 써 봐."

"저녁에 책상 들어서 힘 다 썼어요."

 

 

 

쯧. 혀를 찬 리바이가 벽에 기댄 상체를 일으켜 린 쪽으로 옮겨갔다. 커다란 크기로 숭덩숭덩 썰린 버섯이 한 가득이었다.

 

 

 

이건 누가 먹으라고 이렇게 썬거지?

리바이 씨랑 저...

됐다. 비켜. 요리는 내가 하지.

넵!

 

 

 

린이 재빨리 자리를 비켰다. 사실 린은 요리에 재능이 없었다. 지상으로 내려오기 전에도 끓는 물만 보면 국자를 꼭 쥐고 벌벌 떨던 게 린이었다. 리바이가 칼을 쥐곤 빠르게 양파를 채썰었다. 오... 옆에서 구경하던 린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빠른 손놀림으로 전골이 완성되어 간다. 린의 입에서 쉴새없이 감탄이 흘러 나왔다. 리바이 씨!! 완전 셰프 같아요!! 칫. 내심 기분은 좋은지 귀 끝이 살짝 발그랗다. 린이 의자에 앉았다가, 리바이의 근처에서 알짱거리다가, 응원의 노래를 불렀다가 할 동안 전골이 완성됐다. 버섯 전골을 식탁에 두고 앉은 리바이가 멀뚱히 서 있는 린을 쳐다 봤다.

 

 

 

"저 서서 먹어요?"

"그럼 집 주인이 서냐?"

"나도 앉을래."

 

 

 

린이 의자 쪽으로 후다닥 걸어가 리바이의 무릎 위에 냉큼 앉았다. 이렇게 하면 둘이 앉을 수 있지롱. 린이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마냥 리바이에게 붙었다.

 

 

 

... ... 안 비켜?

싫은뎅.

좋은 말로 할 때 비켜.

왜. 또 내쫓게요? 치사해.

 

 

 

린이 뾰로통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몇 번 쓸던 리바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린의 어깨를 잡았다. 그대로 끌어다 의자에 앉히자 동그란 눈이 반짝거린다.

 

 

 

"나 앉으라고?"

"시끄러우니까 그냥 네놈이 쓰는 게 낫겠군."

"그럼 리바이 씨가 제 무릎에 앉을래요?"

"전골이나 먹어."

 

 

 

잉. 울상이 된 린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농담도 못하게 해. 버섯을 집어 입에 넣자 따뜻한 기운이 입 안에 퍼진다. 금세 표정이 풀린 린이 얌얌 이것저것 주워 먹는 걸 보던 리바이는... 또 다람쥐를 연상했다. 나도 미쳤군. 멀쩡한 사람(사람은 아니지만)을 보고 다람쥐니 뭐니... 자조하며 젓가락을 들자, 린이 눈을 깜빡이며 버섯 따위로 가득찬 입을 열었다.

 

 

 

"진짜 맛있다. 이거 드세요. 이거랑 이것두."

"다 먹고 말해. 입 안에 음식물이 든 채로는 말 하지 마."

"지인짜 깐깐하다..."

 

 

 

수저에 이것저것 올려 산을 만들던 린이 입술을 비죽거리며 물러났다. 열심히 오물거리는 입이 꽤... 깜찍했다. 그런 생각을 한 리바이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오늘 만난 사람을, 물론 사람은 아니지만, 하여튼 오늘 만난 생명체를 이렇게 호의적으로 볼 수 있나? 천사에게 홀린 것은 아닐까? 의문들은 린이 야채와 고기를 올린 숟가락을 호호 불고 리바이에게 내밀자 사르륵 녹아 사라졌다. 조금은 홀리는 것도 괜찮지. 뭐든 괜찮은 기분이다. 너나 먹어. 지저분하군. 지금 내 입김이 더럽다는 거예요?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사람 사는 것 같지도 않는 집안을 가득 채운다. 꽤 즐거운 기분이 드는 것을, 그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리바이는 왜인지 곁이 묵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곧 옆에 웅크려 자고 있는 린을 보고,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여기 파고들었다는 말이지...

 

 

 

부스럭거리던 린이 리바이 쪽으로 좀 더 바짝 붙었다. 일... 열심히... 할게요... 웅얼거리는 잠꼬대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꿈 속에서 호되게 혼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분명 어제 소파 위에 던져두고 왔는데. 연어마냥 침실로 거슬러 들어온 폼이 웃겼다. 잠을 얕게 자는데도 그를 깨우지 않고 들어올 정도면... 사람이 아니긴 아닌 모양이었다. 리바이는 이 말썽쟁이 여자를 깨울까 잠깐 고민하다가, 좀 더 재우기로 마음먹었다.

 

 

 

동그란 이마가 톡 튀어나와 있다. 그 아래로 반버선 코가 미끄러지듯 있고, 그 끝은 동그랗다. 감은 눈 아래로 속눈썹이 길게 늘어진다. 호흡에 맞춰 가늘게 달싹였다. 복숭아 색이 옅게 도는 흰 피부는 부드러워 보인다.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몇 가닥 떨어져 있다. 그리고,

 

 

 

입술. 시선이 꾹 다물린 입술에 고정되자 그가 빠르게 눈을 돌렸다. 자는 사람 입술이나 쳐다 보고, 린이 눈치챈다면 하루 종일 웃으며 놀릴 소재였다.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아홉 시 삼십 이 분. 슬슬 깨워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잼 바른 빵을 먹었다. 둘 중 아무도 빵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포도 잼을 바른 빵은 바삭했다. 린은 일정 시간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허기를 느끼는 몸이 귀찮았지만, 리바이와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음식을 먹는 행위는 좋았으므로 가만히 있었다. 빵을 올려둔 접시를 싱크대로 옮겼다. 리바이가 자연스럽게 싱크대 앞에 섰다. 어젯밤 린에게 설거지를 맡겼다가 딱 두 개 있는 그릇 중 하나를 깨먹었기 때문이다. 린은 또 그 옆에 서서 말 없이 속으로 응원을 재개했다.

 

 

 

리바이가 빠르고 정확하게 설거지를 해치우는 걸 보던 린이, 슬슬 그의 곁으로 바짝 붙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대로 무시하자 반 바퀴 빙 돌아 등 쪽으로 옮겨간다. 그 상태로 팔을 들어 리바이를 꾸욱 껴안은 린이 등에 머리를 비볐다. 사람보다는 강아지가 다리에 몸을 비비는 것 같은 행위여서 거부감이 덜 했다. 딱히 말을 하는 게 귀찮았기 때문에 그는 설거지를 하는 내내 린이 본인을 끌어안고 있는 걸 가만두었다. 부비적거리던 린이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사람이랑 닿아있는 건 되게 기분 좋은 일이네요."

"난 불편해 죽겠는데 말이지."

"천사가 되기 전 일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무시하는 거냐?"

"근데 이렇게 누굴 안고 있는 게 기분 좋다면... 그 전에 나는 아마 바다였을 거야. 바다는 모든 걸 안고 있잖아요. 땅도, 바위도..."

 

 

 

접시 위의 거품을 헹구었다. 개수대로 거품을 띄운 물줄기가 빠져나간다. 등 뒤에 딱 달라붙은 몸에선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몸만 빌려왔군. 쿵, 쿵, 쿵. 누구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크게 울린다. 물을 더 세게 틀었다. 소리는 물 소리에 묻혔지만 발 끝부터 올라오는 간지러운 기분을 어떻게 할까. 제 정신이 아니야. 볼 안 쪽을 세게 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두근거림에 잠식될 것 같았다. 홀린 게 틀림없어. 물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오늘 주말이잖아요. 어디 안 가요?"

"그럴 기운 없어."

"영화 보러 가요."

 

 

 

이제 내 말은 아주 무시하기로 했나 보군. 보러 가요, 응? 심드렁한 리바이와 억지로 눈을 맞추며 린이 애교있게 물었다. 이거 제목 좋다! 그 커플의 사정. 예매한다? 천국산 핸드폰도 그런 게 되는군. 다 되는데... 천국이랑 연락만 안 돼. 그래서 내가 팀장님한테 변명도 못 하고 그냥 벌 받는 거잖아요. 핸드폰을 꾹꾹 누르던 린이 활짝 웃으며 화면을 들이밀었다. 가요!

 

 

 

 

 

영화관에 도착한 둘은... 후회 중이었다. 그 커플의 사정이 그 사정이었다니. 그런 사정이 있었다니. 영화는 무려... B급 성인 영화였다. 얼굴이 새빨개진 린이 눈을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깜빡거렸다. 주변의 커플들은 전부 영화관에서 하면 안 되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리바이와 린만 낙동강 오리알마냥 덩그러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리바이 씨. 리바이 씨. 우리 나가요. 그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둘은 민망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상영관을 나왔다. 린의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처럼 새빨갰다. 리바이의 귀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대로 손을 대면 앗 뜨거! 하고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색이었다.

 

 

 

"... ... ."

"... ... ."

"하하."

"웃지마."

"넵."

 

 

 

다시 정적이 흘렀다. 린은 꼼지락거리던 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꼭 무슨 짓이라도 잔뜩 한 듯한 차림새였다. 민망한 눈으로 괜히 소매만 죽 당겨 손바닥을 가렸다. 리바이가 눈을 흘겨 주의를 주는 게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음... 오락실이라도 갈래요?"

"그러지. 네가 안내해."

"좋아요! 농구게임 해요. 농구게임. 저 진짜 잘하거든요. 그거. 맨날 다이다이 뜨면 제가 이겼어요."

 

 

 

게임랜드. 크고 투박한 글씨의 간판 아래에 잠깐 서 있다가, 총총 걸어 들어갔다. 안 봐줄 거니까요! 지는 사람 딱밤 맞기!

 

 

 

 

 

그리고 정확히 세 시간 뒤, 빨개진 이마의 린이 불만 가득한 얼굴을 구기고 서 있었다.

 

 

 

이... 이 사람 어떻게 게임을 이렇게 잘 하지? 처음이라면서... 끝없는 고뇌에 빠진 린이 충격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리바이가 손을 푸는 모습을 본 린이 더듬더듬 그를 만류했다. 리바이 씨. 잠깐만요. 우리 대화로 해결해요. 저기요.

 

 

 

딱!

 

 

 

린은 정말 딱 한 번만 그를 패고 싶다고 생각했다.

 

 

-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자 밖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한 손에 3단으로 쌓은 콘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린이 제일 윗층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아, 재밌다.

 

 

 

"너는,"

"응?"

"언제까지 여기 있는 거지?"

 

 

 

찬 바람이 둘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 린이 아이스크림에 묻었던 입술을 떼고 혀로 가볍게 핥았다. 음... 조만간 곧 가지 않을까요. 사실 나, 좀 유능한 인재라 없으면 큰일나거든.

 

 

 

왜요? 나 없으면 외로울까봐? 장난스레 묻던 린이 그의 가라앉은 눈동자에 멈칫했다.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휙 돌려 아이스크림에 집중하는 척, 리바이를 힐끔거렸다.

 

 

 

그래.

네가 없으면 조금 외롭겠군.

 

 

 

쿵. 뭔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린은 그의 쓸쓸한 목소리를 듣고 허둥대다가 그만 아이스크림을 놓쳤다. 철퍼덕, 바닥으로 추락한 삼단 콘 아이스크림은 원래의 구 모양을 잃은 채 찌그러졌다. 사실 그건 별로 큰 문제가 안 되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달빛이 리바이의 얼굴 위를 비추었다. 그가 눈을 내리깔고 말을 이었다. 멋대로 찾아와서 멋대로, 내 세상을 뒤집어 놓더니... ... . 그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아주 멋대로 말이야. 그런데도 널 미워할 수가 없어. 린은 몸만 빌려 텅 빈 심장이 뛰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꼴깍, 침이 넘어갔다. 나한테 정 주지 말아요. 나 좋아하지 말아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경고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충동적인 욕심이었다. 그를 안았을 때 기분이 좋았던 건, 계속 닿고 싶었던 건. 린이 전생에 바다같은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오직 그 이유였음을 린은 비로소 깨달았다. 어물거리던 린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발을 옮겼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날들이었다. 린은 인간의 몸에 완벽히 적응했다. 아침 일찍 깨우면 깜짝 놀라 자명종을 염력으로 부수는 일이 가끔 있었지만, 그건 정말 가끔이었다. 린은 어느 날 뜬금없이, 아주 갑작스럽게 이별을 예고했다. 나 곧 가야될 것 같아. 복귀하래요. 리바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 잡을 수 조차 없었다. 어떤 사이였어도 그는 가만히 있었겠지만. 천계와는 연락도 안 된다면서 어떻게 들은 거지? 천계 사람들끼리는 텔레파시 쓸 수 있어요. 이렇게... 지이잉. 느껴져요? 아니. 슬프다... ... .

 

 

 

"오늘 공원에서 불꽃놀이를 한대요."

 

 

 

가면 안 돼? 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일 출근이야."

"왜애... 한 번만 가자."

 

 

 

린이 말 끝을 질질 끌며 애교 부리듯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귀찮게 하기는... 옷 입어. 아싸!

 

 

 

 

 

밖은 어두웠다. 목도리에 털모자까지 둘둘 두르고 나온 린이 벌벌 떨며 리바이를 뒤쫓아 쫑쫑쫑 걸어갔다.

 

 

 

추워요. 손 잡아줘. ... 아직도 추워. 안아줘요. ... 추워 죽겠어. 뽀뽀 해줘요. 적당히 해. 적당히. 고백 아닌 고백 이후, 둘의 관계는 달라진 게 없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킨십이 늘었다는 점. 사실 린은 매일 밤 이게 사귀는 건지 아닌지 고민하다 잠들곤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을 땐 이미 불꽃 놀이가 한창이었다. 불꽃이 팡팡 터졌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불빛들이 그의 얼굴 위로 쏟아진다.

 

 

 

문득 린은 궁금증이 생겨 그에게 물었다. 있잖아요.

 

 

 

 

 

"나 가도 기억해 줄 거예요?"

"기억해주마."

"죽을 때까지?"

"그래. 네가 있는 그곳에 갈 때까지 기억해주지."

 

 

 

 

 

심장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있을 때면 항상 그랬고, 이런 말을 들으면 뱃속이 간지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좋아한다. 그의 삐죽거리는 눈매와 결 좋은 머리카락, 항상 찌푸리고 있는 미간을 전부 통틀어서 좋아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었으며, 행복했다...

 

 

 

말은 험하게 하면서 갈 곳 없는 여자를 혼자 놔두지 못 하는 그가 좋았다. 길을 잃으면 함께 가주는 그가 좋았다. 요리를 못 하면 대신 해 주는 그가, 탓하지 않는 그가, 항상 못 이기는 척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그가 좋았다. 불꽃이 터져 땅으로 추락한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린처럼. 소원 빌어요, 소원! 소원은 유성이 떨어질 때나 비는 거지. 그거나 그거나. 뭐가 떨어지긴 했잖아요.

 

 

 

린이 손을 폭 겹치고 눈을 감았다. 꽤 고심해 소원을 비는 모습이 생각해 둔 소원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잠깐을 그러고 있던 린이 고개를 확 돌리고 물었다. 미소가 맴도는 입가, 양 볼은 발개진 채로.

 

 

 

"우리 연애해요."

"이미 교제 중인거 아니었나?"

"앗싸! 소원 성취."

 

 

 

이제 매일매일 뽀뽀해도 되겠다. 언젠 안한 것처럼 말 하지마. 좀 더... 당당하게 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쪽. 린이 가볍게 입술을 맞붙였다. 응? 이렇게. 배시시 웃는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쪽, 쪽, 쪽. 장난하듯이 뽀뽀 세례가 이어졌다. 짧게 끊어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린의 양 볼을 꾸욱 두 손으로 잡은 리바이가, 느릿하게 엄지 손가락으로 볼을 쓸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 연인 사이에 농담으로나 하는 말이 지금 눈 앞에 실존한다. 성격은 꼭, 소악마 같아서는... 낮게 중얼거리며 볼을 쓰다듬자 꾹 눌린 볼 사이에 끼인 입술이 조잘조잘 떠들었다. 지금 욕하는 거예요? 나 욕하는 거죠. 그쵸.

 

 

 

"키스 해도 되냐?"

"엥?"

"싫으면 말고."

 

 

 

아니, 아니... 아니. 좋아요. 좋아요... 린이 웅얼거렸다. 까만 눈동자가 깜박깜박 흔들렸다. 눈을 내리깔고 느릿하게 양 볼을 잡아 끌자, 린이 저항없이 끌려 온다.

 

 

 

시선이 마주치자 리바이가 픽 웃으며 속삭였다. 눈을 감아. 그 말이 무슨 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또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린은 눈을 감았다. 곧 입술에 감각이 닿는다. 미지근하고 말랑한 게... 입술을 쿡쿡 쑤시다가 한 번 가볍게 흡입한다. 이로 아프지 않게 깨물고, 입술 새로 조심스럽게 혀를 밀어 넣는다. 입술은 살짝 거칠구나. 볼을 잡은 양 손도 굳은 살이 단단히 배겨있다. 그리고 또... 속으로 생각하던 린의 입술이 가볍게 깨물렸다. 아!... 작은 신음이 터진다. 집중. 먹이를 문 포식자같은 눈으로 그가 주의를 줬다. 다시 입술이 맞부딪혔다. 혀끼리 비벼지는 감각이 낯설다. 혀뿌리를 긁듯이 빨아올린 리바이가 양 볼을 잡고 있던 손을 옮겨 린의 뒷목을 받쳤다. 하늘에선 불꽃이 팡팡 터진다. 한창이다. 리바이는 눈을 꾹 감은 그대로 소원을 빌었다.

 

 

 

이대로 사랑하게 해 달라고. 간지러울 정도로 낭만적인 소원이었다.

 

 

 

 

 

입술이 떨어졌을 때 린의 얼굴은 온통 울상이었다. 하늘에서 독촉이라도 받았나 보지. 맞는 말이었는지 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 이제 가야 되나봐.

... ... .

짜증나. 지들 필요할 때만 부르고. 내 의사는 하나도... ... .

울지마.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말 걸 그랬어요.

 

 

 

덜컥 실감이 났는지 린의 목소리가 점점 울음에 섞여 젖어간다.

 

 

 

다섯 살 때 당신을 구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 넌 더 울었을 거잖아.

...키스해 줘요.

 

 

 

 

 

리바이가 아무 말 없이 린을 잡아 끌었다. 입술이 진하게 맞붙었다가 떨어진다. 한 번 더요. ... 한 번 더. ... 또... ... .

 

 

 

"바람필 생각 하지마요. 나 위에서 다 보고 있으니까."

"그래."

"다른 사람이랑 눈 맞아봐. 바로 벼락맞게 할 거야."

"그럴 일 없으니 맘대로 해."

 

 

 

두 시선이 교환된다. 린이 확 덤벼들어 리바이를 안았다. 리바이 씨.

 

 

 

미리 잘 자요.

너도.

내 꿈 꾸고.

...

 

 

 

-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옆 자리는 비어 있었다. 리바이는 한참 빈 자리를 쳐다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맞추지 않았다고 생각한 알람이 다행히도 제 시간에 울렸다. 잼을 바른 빵을 떨어뜨리지 않았고, 싱크대 아래는 깨끗했다. 여유있게 지하철을 탔다. 그의 옆자리 신입사원 에렌은 커피를 쏟지 않았다. 길에 떨어진 바나나 껍질을 용케 밟지 않았고, 초등생이 찬 공에 맞지도 않았다. 지나가다 땅에 떨어진 오만원 권을 줍기도 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있나 보군. 리바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날이 맑고 햇볕이 쨍쨍했다.

 

재수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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