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버튼을 누를 경우, 음악이 나옵니다.



허강민 드림
* 검은방1~2를 하지 않은 분들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따르던 막내였다.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고 그만큼 모두에게 사랑을 주는 착한 동생. 강민은 자신과는 다른 동생이 싫지만은 않았다. 남들과 비슷하게 지내고 있었다. 넘치진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은 하루하루가 지겹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지겨움이 그리워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마지막으로 구조된 막내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음주 의료사고라는 말도 안 되고 처음 듣는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난다. 의사 스스로 음주 진료를 했음에도 사고 처리가 된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군대에 있던 둘째가 알게 되어 휴가를 내고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자신과는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막내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던 둘째는 감정이 풍부하고 유약했다. 막내의 죽음을 가장 크게 슬퍼했다. 오랜 기간 지친 부모님을 대신해 그만큼 더 슬퍼했다. 그랬던 둘째가 막내의 장례를 치르러 나온 휴가 복귀 날 밤 막내를 따라 떠났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공허함이 들었다. 그 충격은 자신뿐만 아닌 남은 가족, 부모님까지…….
떠들썩한 일을 연속으로 치루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시끌벅적했던 집안은 조용했고 따듯했던 온기가 사라졌다.
남겨진 건 유산과 그들이 있었다는 걸 나타내는 물건뿐.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니 따라갈까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러다 남겨진 유산으로 살아볼까도 했었다. 그 끝에 도달한 건 복수. 그 하나였다.
복수를 선택하고 강민이 먼저 한 것은 유산과 보험금으로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을 뒷조사하고 저택을 계약하는 거였다. 뒷조사는 어느 정도 끝났으니 다음으로 해야 하는 저택 계약을 위해 그 저택의 주인을 만나기로 했다. 저택 앞에서 만나기로 한 저택의 주인을 보니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는 그에게 강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거리를 두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저택을 설명한다.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저택이라고 들었는데 어째서인지 청소되어 있지 않고 조금 전까지 누군가 살고 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쌓인 먼지를 보면 분명 오랫동안 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 살 수도 있고 별장처럼 이용 할 수도 있는 거였다.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니 넘기기로 한다.
“그런데 왜 이걸 사는 거죠?”
“이런 저택이 필요했습니다. 혼자서 큰 저택에서 사는”
“그렇구나. 전 또 무대를 만드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무대 말입니까?”
“두 동생과 부모님을 죽인 사람들을 세울 무대요.”
그의 말에 고개를 획 돌리자 그가 두 손을 소리내 두어 번 마주치자 방이 어두워지며 누군가 프로젝트 빔을 쏜 것 같이 벽에 큰 화면이 떴다. 자신이 뒷조사한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의 얼굴이 정리되어 화면 안으로 보인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경계하며 지켜보자 그가 활짝 웃었다. 마법일까. 그의 옷도 조금 전과는 달랐다.
“제가 당신의 복수를 도와줄 수 있는데 어떠세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경계할만해요. 당신의 복수심이 너무 달콤해서 저도 모르게 접근을 했네요.”
“누구냐고 물었잖아!”
“…이곳 사람들은 저를 이렇게 부르더라고요. 악마라고요.”
이 상황을 안 봤다면 그냥 미쳤다고 무시를 했겠지만 강민은 웃음이 났다. 친절하게 웃으며 사근사근하게 집을 소개하던 여자가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악마라는게. 큰 소리로 웃다 고개를 바로 세웠다.
“그래서 어때요? 그런데 도와줄 순 있지만, 그 대가는”
“상관없어.”
이미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그들을 없앨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괜찮을 만큼. 악마와 함께하지 않아도 이미 괴물이 될 텐데 악마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좋아요. 그럼 이번 복수극이 끝나면 당신을 가질 거예요.”
“그럼 우선 그들의 정보를 더 알려줘.”
“너무해! 제 얘기 들었어요?”
“들었으니까 알려달라고.”
강민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선 손뼉을 치자 다른 화면이 보인다. 발표 하는 것처럼 설명을 하면서 강민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속에서 불이 더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 불이 얼마나 커질까. 악마라고 불린 그는 씩 웃었다. 그의 영혼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먹이에 감정이 들 리가 없으니. 이번 계획이 성공하길 바라며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자고 혼자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강민이 원하는 대로 세워진 무대를 지켜보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등장인물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를 공격하고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등장인물이 아닌 개입자가 등장하며 점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는 강민의 꺼지지 않는 불꽃을 느꼈다. 빠르게 가져가려 했지만, 기회가 다음으로 넘어가게 될 것 같아 개입자에게 제압당한 그를 도와주기로 한다. 전부를 죽이기 전에 그가 먼저 죽는다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것이 이유였다.
다음 부대를 위해 사람 하나 홀리는 건 악마에겐 쉬운 일이었다. 그냥 하기엔 남들에게 눈치가 있으니 인간인척하며 그동안 모아둔 돈을 건네며 사이비종교의 교주를 홀려 강민을 끌어들였다. 본인이 도와줄 수도 있지만, 그의 무대를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니 말이다. 강민에게 원하는 걸 다 들어주라고 속삭이며 자신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강민의 앞에 나타났다. 그들의 도움이 있다면 분명 강민은 포기하지 않을 거다.
“백선교?”
“그래. 그들이 도와주겠다더군. 네가 한 건가 싶어서.”
“제가 직접 도와주면 되는 건데 굳이 다른 인간을 끌어들여서?”
“아님 됐어. 이번에도 내가 세우는 무대에 끼어들 생각 하지 마.”
“알았어요. 이번엔 강민씨가 위험해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게요.”
그의 말에 강민은 대답을 하지 않고 제 일을 마저 한다. 이번엔 낡은 배구나. 백선교에서 그가 원하는 데로 지원을 해준 모양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이 없을까. 그를 화나게 만들고도 싶었다.
“달궈진 먹이를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먹이라니. 네가 평소에 밥을 먹는 걸 본적이 없는데.”
“아. 속으로 생각하려다 그만…….”
그가 소리 내 웃자 강민은 불쾌한 표정으로 전선을 자른다. 강민의 시선에 입을 다물고 옅게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드라이버를 집어 건네자 강민은 숨을 길게 내쉬며 받아든다. 이번엔 정말 잘 먹겠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강민을 빤히 쳐다본다. 그의 예상이 빗나갈 거란 걸 모른 체 눈앞에 있는 먹이만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