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외로군, 마르타.”
“네? 뭐가요?”
“네가 이런 영화를 좋아할 줄은 몰랐어.”
“엥? 그래요? 스티븐 씨 안의 저는 어떤 이미지인 거죠?!”
글쎄다. 굳이 정의하려니 딱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만화영화를 좋아할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다’라는 말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티븐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은 애써 삼키고,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는 스크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오늘이 무비 데이라고 영화표 두 장을 선물 받았는데, 같이 보러 갈 사람?”
오늘 아침 라이브라에 출근한 그는 대뜸 공짜 영화표 두 장을 내밀며 외쳤고, 요란한 등장 덕분인지 그 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꽤 많았었다. 크라우스는 보고 싶은 영화가 최근 개봉했다며 흥미를 보였고, 재프와 레오는 단순히 영화를 보러 가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 보이는지 가고 싶단 의사를 밝혔었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들 사이에서 표의 주인으로 선택된 것은 스티븐이었다.
“뭐,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뿐이지만.”
마르타가 영화를 보러 갈 시간에 크라우스는 다른 업무가 있었고, 레오는 갑자기 급한 용무가 생겨 자리를 비우게 된 탓에 영화는 보러 갈 수 없게 되었다. 재프는…, 이른 아침부터 숨어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느라 행방불명이 되었지.
“그럼, 남은 건 스티븐 씨뿐이네요. 가실래요?”
스티븐은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마침 자신은 오늘 별다른 급한 용무가 없었고, 마르타의 영화 취향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액션…, 아니. SF나 판타지 쪽을 더 좋아하려나. 로맨스 영화는 관심 없을 것 같은데.’
마르타는 제가 좋아하는 건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싫어하는 것에는 말을 아끼는 타입이었다. 그러니 그의 취향을 유추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에 속했지. 그가 평소 자주 떠드는 주제와 지금 개봉 중인 영화들의 교집합을 비교하면 분명 오늘 볼 영화는 최근 개봉한 히어로 영화나 한창 흥행 중인 첩보물 영화.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분명, 그리 생각했는데….
“안녕하세요, ‘구름돌이와 빗방울 대모험’으로 성인 두 명 부탁해요.”
“푸흡!”
예상외의 선택은 방심하고 있던 스티븐의 허를 제대로 찔렀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아이스티를 마시던 스티븐은 사레들려 기침을 내뱉으면서도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아하고 평온한, 심지어 조금은 들뜬 얼굴로 마르타가 고른 영화는, 12세 이상 이용가의 어린이용 만화영화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걸 볼 건가, 마르타?”
“예? 당연하죠. 스티븐 씨는 어떤 거라도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분명 그렇지만…. 아니, 네 선택에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네. 예상 밖이라 놀란 것뿐이니까.”
혹시 장난을 치는 걸까 싶어 되물어 봐도, 마르타는 어째서 그리 놀라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답하니 뭐라 대꾸할 수도 없다. 스티븐은 제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인정하고, 얌전히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와서 다행이었군.’
재프나 레오였다면 분명 다른 걸 보자고 했을 것 같고, 크라우스는…. 아, 크라우스는 좋아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따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으니, 역시 제가 따라온 게 마르타에게도 가장 좋은 일이 된 게 아닐까.
“이런,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작게 중얼거린 그는, 스크린을 뛰어다니는 앙증맞은 캐릭터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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