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켄지 씨는 인기쟁이네요.”

갑작스러운 루미의 말에 켄지는 읽고 있던 대본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보았다. 일하고 있던 게 아니었나. 최근 새로운 배역을 맡았다고 하기에 그 대본을 보고 있는 줄 알았더니. 작게 한숨을 쉬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루미가 읽고 있던 잡지를 눈앞에 펼쳐 보였다.

 

‘키스데이 기념 키스하고 싶은 남성 연예인 순위’

 

6월 14일을 세간에선 키스데이라고 부른다는 소리를 들어본 것도 같았다. 하지만 저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루미가 보여주었으니 무언가 의미가 있겠지 싶어, 켄지는 천천히 순위를 확인했다. 1위 키류 켄지. 2위 키치세 유이치로. 3위 모가미 사쿠. 3위는 녹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인가. 1, 2위가 모두 작은 소속사 출신이니 한동안 꽤 이슈가 될 것 같긴 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모델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이치로가 순위에 오르다니, 의욕은 없어도 일은 잘하는 모양이었다. 켄지가 눈썹을 슬쩍 올렸다.

 

“키치세 녀석, 제법 인기가 많은가 보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여기!”

 

루미가 손가락으로 1위를 가리켰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아무래도 연인인 자신이 1위가 된 것이 불만인 것 같았다. 이런 허접한 설문 조사 따위, 별로 신경 쓸 일도 아니건만. 키치세도 아이바랑 사귀고 있다고 아는데. 슬쩍 말을 돌리자 카노는 이런 거 신경 안 쓰는 타입이잖아요. 하고 받아쳤다. 맞는 말이었기에 달리 할 말은 없었다. 질투하는 건가? 그 모습이 꽤 귀여워 보여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그는 자신이 웃었다는 것을 감추기라도 하듯 루미가 들고 있던 잡지를 한 장 넘겼다. 앞 장이 남성 연예인이라면, 그 뒷장은 여성 연예인일 것이었다. 켄지가 빠르게 한 면을 훑더니, 손가락으로 루미의 이름을 짚었다.

 

“그럼 이건 뭐지?”

 

1위 네코야나기 루미. 2위 세토 카에. 3위 호시노 키라라. 자신의 이름이 실려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는지, 루미가 눈을 크게 떴다. 천천히 순위를 살펴보다 호시노 키라라에 시선이 머물렀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조사한 건가. 평소에도 실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배역을 얻고 다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단 몇 초였지만 이런 사람에게 할애한 시간이 아까웠다. 찾는 사람은 따로 있었기에 그 이후 다른 이름은 빠르게 넘겼다. 8위 아이바 카노. 카노는 8위인가…. 루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켄지가 의문을 표했다. 아…이건 그러니까요, 하고 변명하는 것이 꼭 나쁜 장난을 하다가 걸린 아이 같았다. 너야말로 인기쟁이잖아. 자신이 당황한 것이 1위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켄지가 놀리듯 말했다. 그에 루미가 읽고 있던 잡지를 덮고 어깨에 기대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내주곤 다시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어깨에 기댄 루미는 최대한 방해되지 않도록 하며 대본을 눈으로 훑었다. 이번엔 수사물이라고 했던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켄지가 형사 역할을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 쓰이는 모르는 단어들이 잔뜩 나와 어느 정도 빠르게 넘길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키스신이 있다는 지문이었다. 범죄가 일어나는 사건 현장에서 무슨 연애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드라마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 시청률이 잘 나올 테니까. 언젠가 선배와 둘이서 주역을 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런 키스신 같은 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루어진다고 해도 아주 먼 미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인 후 루미가 입을 열었다.

 

“선배.”

“응?”

“켄지 씨는 키스해본 적 있어요?”

 

당연하지. 켄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게 키스신이니까. 라고 덧붙이자 그제야 어색하게 반응한 루미가 괜히 잡지를 뒤적거렸다. 켄지는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대본으로 눈을 돌렸다. 한참 잡지를 뒤적이는 척하던 루미는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잡지를 덮은 뒤 그에게 팔짱을 꼈다. 그에 켄지가 작게 한숨 쉬며 대본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한동안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라는 듯 그가 루미를 바라보자 시선을 돌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해봤어요? 그…, 키스 말이에요.”

 

긴장한 것인지 팔짱을 낀 손에 땀이 흐르는 것도 같았다. 그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져 켄지는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었다. 그렇군, 하고 생각하는 척 뜸을 들이다가 문득 루미를 바라보자, 그는 제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간절한 눈망울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꽤 귀여운 표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한다면 분명 큰 상처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후에 거짓이라고 밝히더라도 믿어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거짓말을 싫어하니까. 한참 뜸을 들이며 루미를 관찰하던 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너 얼굴에 다 드러난다.”

“어…, 네?”

“있을 리가. 널 만나기 전까지 누구와도 사귄 적이 없어.”

 

그리고 너랑은 아직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그렇지? 은은하게 미소 지으며 물어오는 그를 보고 루미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적극적이면서 이럴 때는 부끄러워한다니. 가볍게 고개를 저은 켄지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머리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허리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갔고, 당황한 루미가 옆을 돌아보자 켄지는 그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선배? 작게 그를 불렀으나 아무 말 말라는 듯 입술을 포갰다. 그저 입술이 맞닿기만 한 키스였으나 루미는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발갛기만 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새빨갛게 익었으리라 생각하니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입술을 뗀 켄지가 그의 얼굴을 보고 키득거렸다. 그리곤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더니, 조심스레 그를 소파에 누였다. 쿠션이 부드럽게 등에 닿았다. 상상치 못한 전개에 숨을 잘못 들이쉰 루미가 딸꾹질을 한 번 하더니 그의 팔을 톡 두드렸다.

 

“켄지 씨, 일하는 중 아니었어요?”

“…그만할까?”

 

그리 말하며 농염하게 웃는 것이, 자신이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부러 말한 듯싶었다. 그런 얼굴로 웃으면 그 누가 넘어오지 않을까. 아까부터 계속 자신이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배한테 손대는 선배라니, 완전 기삿거리네요. 루미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켄지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칫하더니, ‘그럼 가서 제보라도 해보던가.’ 하고 받아쳤다. 물론 그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확신 아래였다. 루미가 아무 대답 없이 그의 목에 팔을 두르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입술을 겹쳐왔다. 조금 전에 했던 닿기만 하는 키스와는 달리 짙고 농밀한 키스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잇속을 파헤치는 혀의 감각에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마치 치열 하나하나를 알아내려는 것처럼 혀로 훑고는 입안을 탐닉했다. 그런 다음에는 또다시 집요하게 혀를 얽어매는 탓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결국, 한계가 임박해서야 겨우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었다. 그도 자신이 정신없이 입술을 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순순히 밀려났다. 루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꽤 괴로웠던 모양인지 눈물이 어려 있었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켄지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친 뒤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다시 가볍게 입을 맞추고, 희롱하는 듯한 손짓이 목덜미로 향하자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는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몇 번 더 건드려보더니 손을 조금 더 아래로 향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켄지를 바라보는 루미의 눈에는 왠지 모를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불만인 것도 같았다. 켄지가 명치 부근의 단추에 손을 대었을 때, 루미는 다급하게 그의 손을 저지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그가 의문을 표하자 루미가 시선을 돌리곤 작게 속삭였다.

 

“처음은 침대에서 하고 싶어요….”

 

그 한마디에 켄지는 루미를 번쩍 안아 올렸다. 이렇게 빠른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루미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가 자신을 떨어뜨려 다치게 할 일은 없을 텐데.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켄지가 다시 웃었다. 긴장했느냐 물어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괜히 심술부리듯 답했다. 그럼 선배는 이 상황에 긴장 안 할 것 같아요? 별말은 없었지만, 그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이 그가 여전히 웃고 있음을 알렸다.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끼며 그것을 숨기기라도 하듯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얌전히 몸을 맡기고 있으니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긴장했는지 여느 때보다 빨리 뛰는 것 같았다. 루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했다. 오늘은 부끄러운 일이 참으로 많은 키스데이였다.

h.png
wedding-day (3).png
kiss (1).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