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하늘.
레드는 저 멀리 흐르는 하얀 구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를 포근하게 감싸는 햇빛의 내음에 풍성한 꼬리가 살랑인다. 살짝 퍼석한 회색 머리카락이 밝게 빛난다. 안방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미네아가 세수를 하는 걸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레드는 냉장고를 열어 어제 미네아가 만들어둔 팬케이크 반죽을 꺼내었다. 키친타월에 기름을 묻히어 팬을 닦고 약불에 일정 시간 올려둔다. 기다린 후에 커다란 국자를 꺼내 반 정도 채워서 팬에 굽기. 차근차근.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조심히 뒤집기. 금속 볼이 다 비워질 때 즈음, 미네아는 외출 채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레드, 잘 잤어?"
미네아의 아침인사에 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한 일상. 미네아는 의자에 가방을 걸어두고는 찬장에서 머그를 포함한 식기를 챙기어 식탁에 내려두었다.
자, 코코아. 그는 레드에게 잔을 건네주었다. 머스터드소스처럼 진하고 묵직한 노랑. 미네아의 초록빛 눈동자에 포슬포슬 올라오는 김이 닿는다. 코코아를 개시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 11월. 그렇지만 선내에서는 계절을 그리 크게 타지도 않으니 별 상관없는 게 아닐까? 이것이 미네아의 생각이다.
오늘은 쿠키데이. 사실 바쁘기는 어제가 바빴다. 미네아가 어린이 병동의 아이들을 구내식당의 주방으로 불러서 쿠키를 구웠기 때문이다. 핼러윈 데이의 여파가 남았는지 아이들은 과자를 또 먹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 사실 대부분은 자신을 돌봐주는 의료 대원들에게 건네진 모양이지만.
그나저나 어제 레드는 무얼 했을까? 미네아는 레드를 보며 생각했다. 평소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는 둘은, 어제 하루 미네아가 바빴던 이유로 떨어져 지냈다. 우려와는 달리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거 같다. 잘 보낸 거겠지.
미네아는 레드가 구워준 팬케이크를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입에 넣었다. 오늘을 쿠키데이가 아니라 레드의 요리 성공 기념일로 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실없는 농담을 머릿속에서 흘려보낸다. 살짝은 그을은 맛에, 질깃하지만. 그래도 맛있다.
미네아와 레드는 숙소를 나섰다.
미네아는 상층의 제어센터로, 레드는 하층부의 훈련실로. 오늘 미네아는 평소와는 다르게 사복을 입고 출근했다. 평소에는 실리콘 재질의 실험복 위에 빨강 점퍼를 입고 다닌다. 기능성에 집중한 투박한 스타일. 그러나 오늘 미네아는 포근한 울 소재의 니트에 팬츠를 입었다. 신발도 구두가 아닌 얄팍한 운동화. 늘 혼자 일하는 그이기에, 대면 업무가 없는 날에는 자율적인 복장도 괜찮다 …고 미네아는 생각한다. 대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미네아도 거기에 생각이 닿았는지 초록빛 눈동자가 살짝 불안해 보인다.
저 멀리 쿠리어가 걸어오고 있다. 쿠키 도장이 찍힌 소포. 미네아가 시킨 소포일 것이다. 정답, 쿠리어는 미네아와 눈을 마주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미네아가 살갑게 인사하자 쿠리어도 밝게 웃으며 답해준다.
"안녕하세요, 박사! 자, 소포 여기 있습니다! 집무실까지 옮겨드릴까요?"
"네,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에요."
둘은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쿠키 데이라 그런가 배달할 소포가 정말 많네요, 쿠리어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포가 아니더라도 건네줄 방식은 많겠지만, 역시 상자로 더해지는 즐거움이 있는 거 같죠? 미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쿠리어 씨, 이거 받아주세요."
"팁인가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쿠리어는 미네아의 팁을 받아들었다.
미네아는 쿠리어에게서 소포를 받아들고는 한 손으로 문을 힘겹게 열었다. 바닥에 잔뜩 쌓인 문서들……. 이러다가 아미야에게 한소리 듣겠는걸. 조만간 정리를 하자, 그는 매일 하는 결심을 또 흘려보내곤 책상에 소포를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묵직하다. 미네아는 작은 커터 칼을 들고 조심스레 소포를 열었다.
예쁘게 포장된 쿠키들. 늑대 얼굴 모양은 레드의 것, 토끼 얼굴 모양은 아미야의 것, 곰돌이 모양은 우르수스 아이들의 것, 정갈하고 섬세한 꾸밈의 쿠키는 레나 선생님의 것. 좋아, 모두 제대로 왔네.
미네아는 몇 달 전, 구내식당의 영양사 대원들에게 찾아가 지원금을 건네주며 쿠키데이에 자신의 이름으로 쿠키를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이 바로 그 부탁이 빛이 발할 날이다. 오늘은 생각보다 즐거운 하루가 될 거 같다.
레드는 어제 무얼 했을까? 레드는 어제 리프에게 쿠키데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뜻은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왠지 적적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발이 움직인 이유는 그도 잘 모른다.
반짝반짝하게 닦인 복도에 검은 굽이 연이어 닿는다. 그렇지만 조용하게, 레드는 기척을 숨기는 걸 제일 잘 한다. 레드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레드, 어디 가는 길이야?"
"리프."
레드는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그는 리프를 찾아 로도스 아일랜드의 바에 방문할 생각이었다. 오늘도 검정과 빨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쿨한 스타일. 레드는 미네아가 전에 했던 리프의 스타일 평가를 곱씹었다.
"물어볼게, 있어. 쿠키데이. 뭔지, 알아?"
그런 걸 나에게 물어봤자. 리프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고민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쿠키를 주는 날. 아닌가?"
리프는 주저하며 답했다.
내가 그런 걸 알리가. 그렇지만 무슨 데이라니,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나도 잘은 몰라. 박사가 더 잘 알 거 같은데. 박사야 늘 바쁘잖아. 물어볼 건 이게 끝이야?"
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네아. 그리고 켈시, 프로스트리프. …레드. 모두, 좋아. 보름달을 닮은 노란 눈동자가 아주 살짝 반짝였다.
그럼, 리프는 가볍게 작별 인사를 하고 목에 걸어두었던 헤드셋을 다시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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