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이런 의뢰도 받나?"
아랑은 여러 개의 꽃을 들고 서 있었지만 그사이에 주화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하태의는 의외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대는 나에게 이런 의뢰는 넣지 않잖소. 하태의는 그리 말했지만 아랑은 미소를 지었다. 9월 14일. 오늘은 포토 데이였다. 사진을 남기는 날. 연인은 아니었지만 아랑은 자신의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거절하지는 않소."
"오후 6시, 오늘 하루 바쁠 테니 시간을 비워놔."
애초에 둘은 의뢰를 받고, 의뢰를 주는 사람이니 이런 건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웠다. 하태의는 안대 너머로 보이는 아랑의 표정을 지켜보다가 자리를 피했다. 아랑은 웃음을 보이던 표정을 굳히다가 뱀으로 모습을 바꾸더니 자기 일을 하러 사라졌다. 그들은 사이퍼니까.
*
오후 6시가 되기 직전, 꽃집을 닫기 직전에 꽃을 들었다. 그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어느 의미도 담기지 않은 꽃이었고 그에게 의뢰를 요청할 때마다 꽃을 주곤 했었다. 물론 그는 버리거나, 보관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꽃을 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6시가 되고 의뢰 장소로 나갔다. 내 손에는 꽃과 카메라가 들려있었고 그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골목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그림자처럼 서 있어."
"신경 쓰지 마시오."
"흐응."
나는 꽃을 하태의에게 던져주며 받게끔 했고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가 잡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사진을 찍어본 적이 언제 쯤인지.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찍어보았지만 사이퍼가 된 이후로는 카메라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힘써오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놓을 수밖에.
꽃을 받은 하태의는 당황한 듯이 꽃을 쳐다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갑작스럽게 꽃은 왜 던지는가, 같은 분위기와 꽃냄새가 함께 풍겨왔다. 나는 옅게 웃으며 조곤조곤 말했다.
"내 의뢰는 당신을 찍는 거야. 돈은 받았잖아. 그러니까 거부하지 말라고."
"그 사진으로 무얼 할거지?"
"네 가족한테 보낼 거야. 문제라도 있어?"
하태의는 미간을 좁히다가-안대 때문에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찌푸리는 미간이 보였다.-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그림자 같았던 그가 그림자 바깥으로 나오면서 꽃을 한 손에 들고 내렸다.
"그럼 어서 가지. 의뢰인."
"하하, 내 이름은 아랑이야, 하태의. 너는 내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의뢰인을 이름으로 부를 생각이 없습니다."
하태의는 갑자기 존댓말을 사용하였다. 거리를 두자는 의미겠지. 햇살 때문에 비춰오는 빛 때문에 눈을 살며시 감다가 다시 떴다. 아, 오늘따라 햇빛이 내리쬐네. 나는 아름답게 찍힐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하태의는 뒤에서 꽃향기를 뿌리며 내 뒤를 따라왔다. 따라오는 과정에서 말은 별로 없었지만, 그들은 이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래를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바다에 떨어질 것만 같은 높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사진만 찍을 생각이니까,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하태의를 찍기 전에 먼저 햇빛으로 반사되어 바닥이 잘 보이는 바다를 두 석 장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확인했을 때는 저 멀리 보이는 섬 같은 것이 찍혀있었고, 나는 그것에 만족해 하태의에게 이곳에 서보라고 시켜보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하태의는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세를 잡을 줄 모를 더러, 그저 옷만 차려입고 온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소리를 내어 웃었더니 하태의는 꽃을 든 상태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웃으시오."
"아니, 그냥. 너무 어색해서. 포즈 좀 잡아볼 수 없어?"
"이게 끝이오. 안부 인사용 사진이라면 이 정도면 충분해."
"정말로? 내가 보기엔 다른 포즈도 잡아보는 게 좋아보이는데."
나는 손짓을 하며 자세를 바꿔보라는 제스처를 보내었다. 하태의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바다를 쳐다보거나 꽃향기를 맡아보거나, 바다에 손을 집어넣는 둥, 여러 가지 포즈를 취했고 나는 그것을 최대한 아름답고 정교하게 찍어 보였다. 하태의는 이제 되지 않았소? 라며 바닷가에 손을 담갔으니 손이 축축하게 젖어있어 꽃을 잡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꽃을 챙기고 그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아직이에요. 더 많은 곳에서 찍어야 사진을 찍는 이유가 되죠."
하태의는 지치지 않았지만 이런 사람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지 멍을 때렸다. 그렇게 하태의는 아랑에게 종일 붙잡혀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랑은 만족한 표정으로 그를 찍어대기 시작하였다. 아랑에게도, 하태의에게도 서로 다른 의미로 즐거운 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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