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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지 쟈쿠라이와 드림주는 과거 연인(구 애인) 관계라는 설정입니다.
오랜만에 휴가를 얻었다. 혼자서 영화를 보려고 계획을 하고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며칠 전에 개봉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내일이 마지막이었고 몇몇 지역은 인기가 없던 탓에 이미 내려간 상태였다. 유일이 남은 곳은 신주쿠인데…….
“뭐… 괜찮겠지?”
늦은 시간에 밖에 남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오후 시간으로 예약을 한다. 그렇게 감독의 전 작품을 결제해서 보며 내일 볼 영화를 볼 생각에 들떠 조금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오랜만에 쉬는 거니까. 일찍 가서 점심도 먹고 구경을 하고 영화를 보고 팜플렛을 사서 돌아오면 완벽한 휴일이 되는 거다. 그래서 계획대로 점심도 먹고 구경도 하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쉬는 날이라 그런 걸까. 그런 것치곤 오늘따라 사람이, 특히 커플이 많은 것 같았다. 뭐 다들 밥 먹고 영화를 보러온 거겠지 싶어 예약한 표를 뽑으려 확인하니 자신의 옆자리 하나 빼곤 전부 예약이 되어있는 걸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분명 자신이 예약 할때만 해도 널널했는데. 영화관에서 할인 쿠폰이라도 뿌려서 많이 보러 온 걸까. 일단 그건 넘어가고 예약한 영화표를 뽑고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영화 전단지만 챙겨 자리로 먼저 가기로 한다. 좌석이 꽉 찬 이상 빨리 가지 않으면 앉아있는 사람의 다리를 헤쳐가며 들어가야 할 게 뻔했다. 가운데 자리라서 미리 앉아 스마트폰을 보던가 하면 된다. 팝콘과 콜라는 다 안 먹을 것 같아서 사지 않았다. 산다 해도 영화에 집중하느라 다 먹지 못한다. 예전에도….
잠깐 누군가를 떠올렸다가 그만두고 좌석을 확인하고 제 자리에 앉았다. 먼저 들어오니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대부분 커플인데 이 영화가 갑자기 인기가 많아진걸까? 그런 거라면 환영이지만 갑자기 하루 사이에 이럴 수가 있을까. 바로 옆에 앉은 커플이 들고 있던 팝콘 냄새에 침을 삼킨다. 슬쩍 팝콘을 보니 봉투엔 11월 14일 무비 데이라고 적혀있었다. 발렌타인데이 같은 그런 걸까? 그래서 오늘따라 커플이 많은 걸까. 기념일이나 이벤트 같은 걸 따로 챙기질 않았고 애초에 저런 게 있던가 싶어 검색하는데 시간이 다 되었는지 불이 꺼졌다. 나중에 검색해보자고 스마트폰을 끄고 가방 안에 넣는다. 영화 시작 전, 다른 영화 광고가 시작되고 불이 꺼져서인지 천천히 누군가 다가와 다리를 부딪친다.
“죄송합니다.”
“괜찮…….”
갑자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불이 꺼져 느슨하게 눕혔던 몸을 바로 세웠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 같아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입을 가렸다. 뒤쪽에서 앉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 앉았다. 아니 하필. 옆에만 한자리가 비었는데 그 자리에 앉은 걸까. 이건 우연이라기엔……. 고개를 돌리려다 조심스레 눈동자만 굴렸다. 옆에 있는 상대가 누군지 깨닫고 큰소리를 낼뻔했다. 영화 광고가 끝나기 전 화면에서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바로 영화 전단지로 얼굴을 가리고 숨을 길게 내쉰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었다. 자신 때문인 걸 알아차렸는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니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기쁨으로 계획한 오늘이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은 병원이 쉬는 날인 걸까. 이런 곳에 혼자 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진구지 쟈쿠라이. 그와는 안 좋게 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 마주칠 시간이 되지 않았고… 옛일을 떠올릴수록 점점 더 불편해졌다. 물론 상대는 아니었지만, 본인만 괜히 어색하고 불편해 피하려 하고 있다. 혼자서 땅 생각을 하다 배우 목소리가 들리자 움찔하며 팔꿈치로 옆을 치는 바람에 제스처로 사과를 한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왔으니 영화에만 집중하자. 옆이 신경 쓰여 미치겠지만 일단 스크린을 보기로 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각자 개인적인 이유로 헤어졌고 그 일이 해결된 후 다시 만났을 땐 이미 서로에겐 연인이 있었다. 짧게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 사이사이 설정이나 배경, 상황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보기 좋은 영화였다. 배우들도 움직임이나 감정 표현도 너무 좋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재밌는데 왜 영화관에선 오늘 밖에 볼 수 없는 걸까. VOD로 올라오면 바로 결제해서 집에서 또 봐야지. 감독님 제발 DVD나 블루레이 제작해 주세요. 혼자서 생각을 하던 차에 갑자기 머리 위로 무게감이 느껴져 놀라 어깨를 들썩이려는 걸 겨우 버텼다. 그 외엔 움직임이 없는 걸 봐선 잠이 든 것 같았다.
이 시간에 이러고 있을 사람은 아니지.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는 그의 소식은 바빴다. 직업도 있고 예전처럼 팀으로 랩인가 그것도 한다고. 우연히 마주친 전 연인의 머리에 기대어 자는 걸 머리를 치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행동으론 그러지 못했다. 화면 빛에 보이는 보랏빛의 긴 머리카락이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해야 했다. 쟈쿠라이야 항상 잘해준 것밖에 없었다. 투정 부리고 화를 낸 건 자신 쪽이었다. 그래도 잘 지냈다. 왜 헤어진 걸까. 영화 내용처럼 각자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가? 2년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헤어지기 전부터 각자 일을 한다고 하다 보니 바빴고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까. 영화 속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연인들 속에 이미 헤어진 사이인 우리는 뭘하고 있는 걸까. 나만 알고 상대는 나인 걸 모르니 상관없나. 그냥 영화에 집중하자고 몸을 움직이지 않고 화면만 응시했다. 상황은 점점 진행되고 주변의 반응 속에서 두 사람만이 조용했다. 한 명은 자느라 한 명은 신경 쓰느라.
곧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오자 바로 몸을 일으켰다. 상대에게 들키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들키고 싶지 않다. 어색하고 불편한 건 딱 질색이니까. 어차피 움직여 깨울 거라면 행동을 빠르게 하며 도망치는 게 나았다. 바로 출구 쪽으로 사람들 다리를 피하며 사과하며 밖으로 나왔다. 팜플렛을 사기위해 바로 달려가면서 지갑을 미리 꺼내 팜플렛 2권을 구매하고 나왔다. 팜플렛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며 소장용 하나를 조심스레 가방에 넣고 하나는 펼쳐보았다. 팜플렛을 보며 혼자 뿌듯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팜플렛을 찍고 개인 SNS에 영화 감상평을 적어 사진과 함께 올린 뒤 다시 팜플렛을 보며 만족해한다. 그 뒤로 자신과 똑같은 팜플렛을 들고 가다 걸음을 멈춘 쟈쿠라이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는. 마주치게 되자 들고 있던 팜플렛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린다. 팜플렛 본다고 쟈쿠라이의 존재를 잠깐 깜박했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이 느껴져 머리카락을 쥐어뜯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팜플렛을 주운 뒤 몸을 일으킨다. 예전보다 더 큰 걸까 아니면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까 얼굴을 마주 보려다 목이 아파 보기하고 고개만 숙여 인사를 한다. 가려는데 갑자기 손을 잡혀 앞으로 가려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숨을 길게 내쉬며 돌아보니 쟈쿠라이가 손을 놓는다.
“잘 지냈습니까?”
“그때랑 똑같이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헤어진 연인이 뭘 할게 있을까. 쟈쿠라이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본인은 할게 없었다. 말없이 서로만 쳐다보다 어설프게 대화가 끊긴 탓에 누군가는 대화를 잇던 마무리를 해야 했다.
“미안하지만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시간 되신다면 같이 차라도 하시겠습니까?”
동시에 나온 대답이 서로 다른 뜻이라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상황이 오자 쟈쿠라이를 보던 그가 다시 숨을 길게 내쉰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 일을 떠올린 탓일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 넘기며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요. 차 정도라면… 대신 시간이 늦었으니까 오래는 못 있어요.”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직 차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갈 준비 얘기까지 해버리니 쟈쿠라이는 그를 보며 웃는다. 그때와는 다르게 짧아진 머리카락을 가졌지만, 행동이나 말투는 여전했다. 영화가 끝났는지 몰려오는 사람들에 쟈쿠라이는 그의 허리 쪽으로 손을 뻗어 제 쪽으로 당겼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아차 싶어 놓는데 상대의 표정이 미묘했다.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 그의 손이 다가와 쳐다보지 말라며 머리를 밀어낸 뒤 거리를 두며 걸어간다. 그것도 잠시, 다시 사람들이 몰려오자 붙어 걸어가며 팜플렛을 사자마자 집으로 갔어야 했다. 아니 조금 전 상황에서도 그냥 집으로 갈걸. 후회하지만 옆에서 저를 안쪽으로 옮겨 걷게 하니 괜히 스마트폰을 만지며 개인 SNS를 들어가 제 생각을 적고선 올리진 못하고 임시저장을 해놓고 위에서 아래로 타임라인만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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