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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그데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라온 단어 하나가 무영의 눈에 들어왔다. 그 단어를 클릭하자, 곧 이에 대한 설명이 나타났다.

 

‘12월 14일. 연인끼리 서로를 안아주는 날.’

 

굳이 안아주는 것까지 기념일로 지정하나? 무영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애인은 날짜에 상관없이 기회만 되면 무영을 안아주곤 했으니까. 윤경은 다른 스킨십보다도 유독 포옹을 좋아했다. 심지어 더운 여름에도. 그래서 어느 여름날, 윤경이 무영을 안아주었던 날, 무영은 이렇게 물어보기도 했다.

 

 

“안 더워요?”

“전혀. 아, 혹시 무영 씨가 더운 거면…….”

“아니, 난 괜찮아요.”

 

 

정말 괜찮았다. 유도 선수 시절 많은 선수들과 겨루고 치대는 과정을 겪었으니, 더운 날 다른 사람과 붙어있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낯선 것뿐이었다. 누군가가 공격도, 방어도 아닌 온전한 애정 때문에 단 하나의 틈도 없이 무영에게 붙으려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영은 그 애정이 좋아서, 나중에는 본인이 윤경을 먼저 안아주기도 했다.

 

취재가 생각보다 잘 안 풀렸던 날, 무영의 옥탑에서 두 사람은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같이 있었다. 다음 계획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야 했기도 하지만, 일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밤하늘을 보던 시간이 더 길었다. 그날따라 무영은 윤경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옥탑에 혼자 남기가 싫었다.

 

 

“아, 시간 너무 늦었다. 오늘 야근이라고 엄마한테 말해두긴 했는데, 아무래도 집에는 가야 내일도 일하니까요.”

“윤경 씨, 잠시만.”

 

 

그리고 무영은 윤경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아이, 진짜. 이러면 또 가기 싫어지잖아요.”

 

 

같은 생각이었구나. 내심 기쁘기도 했다. 결국 얼마 뒤에 윤경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무영은 그 순간의 온기를 생각할 수 있어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무튼 그만큼 포옹은 이제 일상이었다. 그런데도 왜 기념일로 정해진 걸까. 12월이 겨울이라 추워서?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무영은 대한일보로 향했다. 윤경이 퇴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영 씨…….”

 

기다리다 보니 곧 윤경이 나왔다. 왠지 힘이 없고 울적한 모습이었다.

 

“윤경 씨, 무슨 일 있어요?”

“…… 무영 씨.”

 

윤경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무언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무영은 기다렸다. 기다리면 윤경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니까. 그저 옆에서 같이 걷다 보면 들을 수 있었다.

 

“…… 말이 통하지 않아요.”

 

윤경은 한숨을 쉬었다. 그 호흡을 내뱉어도 속이 답답한 건 풀리지 않았지만.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벽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내가 말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않는 느낌? 아무리 그들 사이에 들어가려 해도 정신 차리면 다시 혼자예요. 외딴 섬에 있는 것처럼. 아, 스플래시팀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거기서는 논쟁이라도 하지, 다른 부서에 있는 입사 동기들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냥 내 이야기는 안 듣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요?”

“‘이건 잘못됐다.’라고 말해도, 결국엔 현실과 타협하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문제를 지적하면 이것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냐는 기자들도 있고. 아무리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해도 그렇지.”

 

 

구 상무가 물러나고 대한일보 내의 자정 작용이 이뤄진다고 해도 타성에 젖은 사람들은 생겨날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편하니까. 그 속에서 윤경이 어떻게 조용히 싸우고 있을지 무영은 잘 알고 있었다. 본인도 싸워본 사람이 아니던가.

 

“무영 씨,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요? 지금처럼 해도 괜찮을까요?”

 

다소 불안한 표정의 윤경을 무영은 잠시 바라보았다. 모두가 무영을 말리던 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던 때, 그때마다 무영의 마음속에 문득 들던 의문을 윤경이 그대로 던지고 있었다. 이럴 때 결국 필요한 건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사람이었음을 무영은 알고 있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해도 나중에는 제대로 하게 될 거예요. 제대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잖아요, 윤경 씨는. 정 안 되면 내가 도와주면 되고.”

 

그렇게 말하며 무영은 윤경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윤경이 먼저 무영을 꼭 안아버리는 것이다.

 

“고마워요, 무영 씨. 덕분에 마음이 좀 나아졌어요.”

 

윤경은 무영을 놓지 않고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 무영은 그때 느꼈다. 두 사람은 역시나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들이 날마다 가깝게 붙어있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내가 먼저 안아주려고 했는데.”

“어? 정말요?”

“오늘이 허그데이래요. 연인끼리 서로 안아주는 날.”

“그런데 우리 만날 때마다 이렇게 안고 있지 않나?”

 

이런 의문까지 똑같을 일인가. 무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럼 날마다 기념일인가. 좋네.”

 

무영은 결론을 내렸다. 윤경만 있다면, 그 어떤 하루든 특별하다고. 윤경도 동의하는 듯 가만히 무영의 품에 기댔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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